과학수사로 밝혀낸 진실
2014년 12월 08일(월) 00:00 가가
이재원
광주지검 검사
광주지검 검사
범죄가 갈수록 정교화·지능화되고 있다. 시대 환경 변화에 맞춰 수사 패러다임 역시 급변하고 있다. 검찰은 진술 증거에 의존하지 않고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이른바 ‘과학수사’ 역량 강화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가 속초지청에서 근무하던 3년차 검사 시절이었다. 과학수사를 통해 고소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던 사건이 있었다.
임플란트 기기 제조·판매 업체를 운영하는 A씨가 직원인 B씨를 재물손괴죄로 고소한 사건이었다. A씨의 주장은 2개월 분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퇴사 권유를 받은 B씨가 앙심을 품고 회사 건물 앞마당에서 10억원의 임플란트 의료기기 4만 여개를 불에 태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B씨는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따로 분류해둔 불량 임플란트 제품 278개 정도와 플라스틱 모종판 등을 불에 태워 소각한 것이라고 하면서 무고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주거지 이전을 사유로 사건이송 요청을 반복하였고, 사건은 2개의 청을 거쳐 필자가 근무하던 속초지청으로 이송되었다.
A씨는 사건 당시 회사 경비원의 연락을 받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정확한 피해정도를 확인할 수 없어 출동 경찰관에게 정식으로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다. 이후 창고 내 재고 조사를 통해 피해정도를 확인한 후 고소장을 접수하였다. 하지만 화재 현장을 촬영한 사진과 플라스틱 모종판 등이 불에 녹아 까맣게 굳어버린 소각잔해물이 증거물의 전부였다.
A씨는 수사 진행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대한 원망을 노골적으로 표시하였다. 시가 합계 10억원이 넘는 제품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주장에 수사기관에서 의심을 품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A씨의 주장에 의심을 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려는 소규모 업체에서 고가의 의료기기를 제대로 된 보안 시설조차 구비되지 않은 건물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에 거주하는 A씨가 필자의 면담 요청에 속초까지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그때까지 보관하고 있던 소각잔해물, 그것도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머리가 아파올 정도의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증거물을 검사 앞에 내려놓았다. 필자는 A씨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고, 증거물을 분석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증거물 분석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상태였다. 방법을 강구하다가 대검찰청 과학수사담당관실에 문의를 하였고, 성분 및 수량 분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중앙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실에 분석을 의뢰하기로 결정하였다. 중앙소방학교에서는 비파괴 검사와 합성수지 용융물 제거 실험을 통해 소각잔해물에 대한 감정을 실시하였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소각잔해물에 포함된 임플란트 제품의 종류(34종)와 수량(상부 구조물 및 하부 고정체 합계 40,205개)을 정확히 밝혀낼 수 있었다. 이후 보강수사를 통해 또다시 주거지 이전을 사유로 사건이송 요청을 하던 B씨를 구속 기소하였다. 감정 결과의 신빙성은 항소심 법원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B씨에게 재물손괴죄의 최상한에 근접한 실형이 선고되었다.
2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사건은 필자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A씨의 때 이른 감사편지 때문이다. A씨는 감정 의뢰만으로도 실험의 성패를 떠나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노력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었다. A씨는 사실상 무자력에 가까운 B씨를 상대로 재산적 피해를 변제받으려는 생각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치 다른 의도로 피해를 부풀리려 했던 것처럼 오해받는 상황이 무던히도 힘겨웠던 모양이다.
모든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란 신이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적법 절차 안에서 수집된 증거를 통해 밝혀지는 ‘절차적 진실’이 형사소송의 결과물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실체적 진실’에 보다 근접한 ‘절차적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과학수사 기법의 발굴과 발전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바탕에는 관련자들의 진정성을 파악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검사들의 열정과 의지가 함께 해야 할 터이다.
12월의 둘째 날 자정을 훌쩍 넘긴 지금 광주검찰청에는 상당수의 검사가 불을 밝히고 있다.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광주지검 검사들의 열정과 노력이 올 겨울 광주 시민들에게 따뜻함을 더해줄 온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플란트 기기 제조·판매 업체를 운영하는 A씨가 직원인 B씨를 재물손괴죄로 고소한 사건이었다. A씨의 주장은 2개월 분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퇴사 권유를 받은 B씨가 앙심을 품고 회사 건물 앞마당에서 10억원의 임플란트 의료기기 4만 여개를 불에 태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B씨는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따로 분류해둔 불량 임플란트 제품 278개 정도와 플라스틱 모종판 등을 불에 태워 소각한 것이라고 하면서 무고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주거지 이전을 사유로 사건이송 요청을 반복하였고, 사건은 2개의 청을 거쳐 필자가 근무하던 속초지청으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서울에 거주하는 A씨가 필자의 면담 요청에 속초까지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그때까지 보관하고 있던 소각잔해물, 그것도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머리가 아파올 정도의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증거물을 검사 앞에 내려놓았다. 필자는 A씨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고, 증거물을 분석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증거물 분석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상태였다. 방법을 강구하다가 대검찰청 과학수사담당관실에 문의를 하였고, 성분 및 수량 분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중앙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실에 분석을 의뢰하기로 결정하였다. 중앙소방학교에서는 비파괴 검사와 합성수지 용융물 제거 실험을 통해 소각잔해물에 대한 감정을 실시하였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소각잔해물에 포함된 임플란트 제품의 종류(34종)와 수량(상부 구조물 및 하부 고정체 합계 40,205개)을 정확히 밝혀낼 수 있었다. 이후 보강수사를 통해 또다시 주거지 이전을 사유로 사건이송 요청을 하던 B씨를 구속 기소하였다. 감정 결과의 신빙성은 항소심 법원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B씨에게 재물손괴죄의 최상한에 근접한 실형이 선고되었다.
2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사건은 필자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A씨의 때 이른 감사편지 때문이다. A씨는 감정 의뢰만으로도 실험의 성패를 떠나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노력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었다. A씨는 사실상 무자력에 가까운 B씨를 상대로 재산적 피해를 변제받으려는 생각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치 다른 의도로 피해를 부풀리려 했던 것처럼 오해받는 상황이 무던히도 힘겨웠던 모양이다.
모든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란 신이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적법 절차 안에서 수집된 증거를 통해 밝혀지는 ‘절차적 진실’이 형사소송의 결과물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실체적 진실’에 보다 근접한 ‘절차적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과학수사 기법의 발굴과 발전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바탕에는 관련자들의 진정성을 파악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검사들의 열정과 의지가 함께 해야 할 터이다.
12월의 둘째 날 자정을 훌쩍 넘긴 지금 광주검찰청에는 상당수의 검사가 불을 밝히고 있다.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광주지검 검사들의 열정과 노력이 올 겨울 광주 시민들에게 따뜻함을 더해줄 온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