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상응하는 형
2014년 11월 17일(월) 00:00
이 종 혁
광주지검 검사
“46회에 걸쳐 자동차 운전면허 없이 승용차를 운전하였다.” 몇 달 전 공판검사로서 관여하였던 무면허 운전 사건의 공소사실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5년 전 검사로 임관한 이래 접해 보았던 수많은 무면허 운전 사건 중 그 횟수가 가장 많은 사건이었다. 대부분은 1회 또는 많아야 수회 정도의 무면허 운전으로 기소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실제 그 운전자가 그 보다 많은 무면허 운전을 해 왔다는 상당한 의심이 가는 경우라도 그 입증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 경위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공기업체 직원이었는데 누군가가 투서를 넣은 모양이다. 피고인은 몇 개월 전에 음주운전으로 단속되어 분명히 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되었을 텐데 계속 자신의 차량으로 출퇴근하고 있으니 확인해 달라는 내용으로. 결국 그 공기업체 주차장 CCTV와 출입기록을 통해 실제 피고인이 약 70일 동안 무면허로 운전하여 출퇴근해 온 사실이 확인되었다.

피고인은 자신의 무면허 운전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벌금형으로 선처해 줄 것을 바라고 있었다. 2년 동안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얼마 전에서야 어렵게 정규직이 직원이 되었는데 집행유예 이상의 판결이 선고될 경우 회사 내규에 따라 실직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는지 묻자 음주운전으로 단속되기 불과 한두 달 전이라고 답하였다. 필자는 법정에서, 어렵게 얻은 정규직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공기업체 직원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피고인을 엄중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진술을 하며 수사검사의 의견과 같이 징역형을 구형하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집행유예 이상의 형으로 벌하여 실직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가혹한 결과가 된다는 것을 양형이유로 삼아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게 되면 공무원들은 법률에 따라 당연퇴직 되고, 공기업체나 대기업체 직원들도 기업 내규에 따라 해고되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이나 기업체 직원들에게는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의 품위유지 내지 준법의무가 요구되기 때문에 그러한 법률과 기업내규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의무의 보상으로 신분보장이나 품위유지비 지급 등의 혜택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법률과 기업내규를 이유로 같은 범죄를 저지른 일반인보다 오히려 그들을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형평에 반하는 결과일 것이다(실제 이 사건은 그러한 이유로 항소하였다).

한편으로는 같은 처벌이 이루어질 경우 그들이 겪게 될 일반인보다 가혹한 고통을 감안하면 피고인을 선처한 판결이 일면 수긍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같은 정도의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은 같은 정도의 법률상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면 같은 정도의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라도 개개인의 지위와 능력에 따라 같은 정도의 고통이나 효과가 있도록 행위의 불법성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형벌감당능력까지 고려하여 처벌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법철학적인 물음에 빠져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법과 제도는 그러한 개개인의 지위나 능력, 즉 형벌감당능력을 양형요소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또한, 실제 개개인이 어떠한 형벌감당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측정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법집행기관인 검사로서는 ‘죄에 상응하는 형’의 원칙에 따라 구형과 항소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이상적인 양형제도가 현실화되는 것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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