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피플]“ 자신의 삶 주인으로 사세요 남의 × 치우지 말고”
2014년 11월 12일(수) 00:00
철학자 최 진 석
“스스로 문제를 내고 답을 쓰시오”라는 기말고사 문제가 출제됐다. 학생들은 좋아서 ‘깜∼짝’ 놀란다. 식은 죽 먹기일 것 같아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문제로 내고 답을 쓰면 될 일 아닌가. 그러나 “어떤 개념을 설명하거나 논술하라는 것은 문제가 아님”이라는 시험의 단서 조항에 걸리고 만다.

급기야 시험 시작 5분쯤 되면 대부분 학생이 울상이 된다. 끙끙대다 백지 답안을 낸 학생들은 ‘F학점’을 금부도사가 건네준 사약처럼 받게 된다. 그 불운한 학생은 매 학기당 10%에 달한다. 그럼에도, ‘괴짜’ 교수에게 학점을 따내려는 무모한 학생들은 줄지 않는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최진석(55) 교수. 신안에서 태어나 광주 대동고를 졸업한 전라도 토박이다. 최 교수는 ‘EBS 인문학특강’에서 명쾌한 강의로 유명세를 탔지만, 그는 TV출연 전부터 대기업 CEO, 자치단체에 널리 알려진 인문학 인기강사다. 한 차례 서기도 어려운 삼성전자 임원들을 상대로 한 강단에 두 번씩이나 서는 바람에 뉴스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그는 “밑천이 떨어져서 외부강의를 줄여나갈 생각”이라며 웃었다.

그에게 “왜 학생들에게 난해한 시험문제”를 내는지 물었다. “인문학적인 삶의 출발이 질문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학생은 지식을 습득하려고만 했을 뿐 어떤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시험문제를 어려워 합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웃음)

그는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지론의 소유자답게 종종 술집을 찾는다. 그러나 불편할 때가 자주 있다. ‘아무거나’라는 안주가 들어있는 메뉴판을 볼 때다.

“‘아무거나’라는 안주를 파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게 귀찮아서 ‘아무거나’를 하다 보니 메뉴에도 등장했겠지요.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에요.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인 식욕도 바로 보지 못하잖아요.”

그는 강의에서 ‘쎈’발언을 하고 점잖치 않은 단어도 불쑥 내뱉곤 한다. 변죽 울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간다. 어렵지 않아 청중들은 의외로 좋아한다. 그는 강연에서 “남의 똥 치우지 말고, 내 똥을 싸세요.” “책 속에는 길이 없다”고 말한다.

“제가 입버릇 처럼 ‘책 속에 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책을 읽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책에 나온 내용은 저자의 길이지, 읽는 사람의 길은 아닙니다. 저자의 길을 참고할 뿐 자신의 판단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똥 얘기도 남의 것을 추종하거나 모방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내 것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결국 인문학적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는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제목의 책(소나무)을 냈다. 제목에는 그의 오랜 통찰과 성찰이 응축돼 있다. ‘인문학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로 해석한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인문학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연구하는 것이고, 종국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며 사는 것이다.

“내가 판단하고 생각하는 옳고 그름, 바람직함, 호불호 등은 사실 정치적 판단입니다. 이는 내 것이 아닌 이념이나 신념, 가치관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혹시 ‘나’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신념이나 이념, 가치관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버려야 비로소 인문학적 통찰도, 창의성도 생깁니다.”

그의 학창시절은 자신의 강연처럼 명쾌하고 똑 부러지지는 않았다. 중·고교 1학년 때까지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고 2때 그는 헤어나기 어려운 고민에 빠져든다. 죽음과 삶, 덧없음 등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를 갖게된 거다. 고민은 방황으로 이어져 대학입학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된다. 재수해서 ‘턱걸이’로 어렵사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갔다. 당시 법학이나 정치외교학 전공하기를 바랐던 그의 부친은 교직 생활 41년을 통틀어 단 하루 결근했다. 자식이 철학과를 가게다고 결정하자 충격을 받았던 날이다.

그의 긴 방황은 사실 자신의 원하는 길을 찾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자녀 교육에서도 같은 방식을 고수한다. “어느 날 대학 잘 다니던 아들이 자퇴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겁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했죠. 스스로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따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들이 ‘아빠, 대학 자퇴하려는 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조언을 구했더라면 호되게 나무랐을 것입니다. 사람이 평생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남에게 충고하는 일과 충고를 듣는 것입니다. 자식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울=윤영기기자penfoot@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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