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증명서, ‘뮌히하우젠 트릴레마’?
2014년 02월 24일(월) 00:00 가가
강 용 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광주트라우마센터장
정권 유지를 위해 증거를 왜곡하고 국민의 인권을 짓밟았던 부림사건이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판결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위조를 위조했다는 기사가 언론을 가득 채웁니다.
문득 철학적 난제인 ‘뮌히하우젠 트릴레마’(Munchhausen Trilemma)가 떠올랐습니다. 뮌히하우젠 남작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입니다. 하루는 남작이 말을 타고 가다 늪에 빠졌답니다. 늪에 빠진 말과 자신을 끄집어 내기위해 자기 머리채를 자기 손으로 잡아당겨 늪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철학적 난제 중 ‘뮌히하우젠 트릴레마’는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으로, 증명해야할 사항을 증명된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지요.
이 중세의 뮌히하우젠 남작같은 황당한 이야기가 바로 ‘영사증명서’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일본 등 외국 관련 조작 사건마다 ‘간첩’임을 입증한 증거가 바로 ‘영사 증명서’라는 것입니다. 불법 체포하여 두 달여 고문 가혹행위 끝에 만들어낸 심문조서를 제외하면 ‘영사증명서’가 유일한 증거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 ‘영사증명서’는 외무부가 파견한 외교관이 아니라 안기부가 일본에 파견한 수사관에게 사실 조회를 하면 그 수사관이 ‘영사’라는 직함을 사용하여 작성합니다. 주문자(안기부)가 원하는 내용에 맞춰 ‘김모는 간첩’이라거나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 작성하여 안기부로 보내고, 그걸 검사는 증거로 법원에 제출합니다.
‘영사증명서’는 늪에 빠진 뮌히하우젠 남작처럼 ‘증명해야 할 것’을 ‘증명된 것’으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부립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일본 관련 간첩조작 사건인 김양기 사건에서 유죄의 증거가 된 ‘영사증명서’를 볼까요? 김양기를 간첩으로 포섭했다는 재일 지도원 김철주씨는 8살 때부터 조총련 선전부장이었다는 황당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안기부도 황당하다고 여겼을까요? ‘정정 확인서’를 다시 발급했답니다. 하지만 유죄 판결 다음 날 법원에 도착했다지요.
역시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오주석 사건’의 경우, 문제가 된 일본 친척의 인적사항이 ‘요리사’에서 ‘대남공작원’으로 바뀝니다. 안기부가 작성한 ‘사실 조사 결과 보고’에서는 ‘동향 및 신상관계를 아는 사람이 없어 구체적 사상파악이 곤란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사증명서’에서는 ‘대남 적화통일을 위해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세 개의 ‘영사증명서’가 모두 양식이 다르고, 도장도 틀리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증명되어야할 공소장 내용이 증명되어 유죄가 됩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위조는 마치 시간을 건너뛰는 데쟈뷰를 보는 듯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안기부가 수사하고, 그 내용에 맞게 외국 파견된 안기부 직원인 ‘영사’가 조작하여 작성한 ‘영사증명서’에 따라 유죄가 선고되었던 비극적인 일이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국정원이 ‘영사증명서’를 통해 ‘증명해야할 사항’을 ‘증명된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묘수로 ‘뮌히하우젠 트릴레마’를 해결하다보니 이제는 ‘뮌히하우젠 증후군’으로 나아갈 지도 모르겠군요.
이 증후군에 걸리면 병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지어내고, 마침내 자기도 그 이야기에 도취되어 버리는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수사기관이 증거를 위조한 행위는 범죄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원의 재판 제도를 부정하는 사건입니다. 게다가 타국의 공문서를 위조하는 행위라니요.
주권국가로서 품격은 어디로 간 것인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영사증명서, 군사독재 시절 비극이었던 한 장면이 이제는 희극으로 되풀이 되는 걸까요?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도 볼 수 없다.” 영사증명서가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문득 철학적 난제인 ‘뮌히하우젠 트릴레마’(Munchhausen Trilemma)가 떠올랐습니다. 뮌히하우젠 남작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입니다. 하루는 남작이 말을 타고 가다 늪에 빠졌답니다. 늪에 빠진 말과 자신을 끄집어 내기위해 자기 머리채를 자기 손으로 잡아당겨 늪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이 중세의 뮌히하우젠 남작같은 황당한 이야기가 바로 ‘영사증명서’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일본 등 외국 관련 조작 사건마다 ‘간첩’임을 입증한 증거가 바로 ‘영사 증명서’라는 것입니다. 불법 체포하여 두 달여 고문 가혹행위 끝에 만들어낸 심문조서를 제외하면 ‘영사증명서’가 유일한 증거인 셈입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일본 관련 간첩조작 사건인 김양기 사건에서 유죄의 증거가 된 ‘영사증명서’를 볼까요? 김양기를 간첩으로 포섭했다는 재일 지도원 김철주씨는 8살 때부터 조총련 선전부장이었다는 황당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안기부도 황당하다고 여겼을까요? ‘정정 확인서’를 다시 발급했답니다. 하지만 유죄 판결 다음 날 법원에 도착했다지요.
역시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오주석 사건’의 경우, 문제가 된 일본 친척의 인적사항이 ‘요리사’에서 ‘대남공작원’으로 바뀝니다. 안기부가 작성한 ‘사실 조사 결과 보고’에서는 ‘동향 및 신상관계를 아는 사람이 없어 구체적 사상파악이 곤란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사증명서’에서는 ‘대남 적화통일을 위해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세 개의 ‘영사증명서’가 모두 양식이 다르고, 도장도 틀리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증명되어야할 공소장 내용이 증명되어 유죄가 됩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위조는 마치 시간을 건너뛰는 데쟈뷰를 보는 듯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안기부가 수사하고, 그 내용에 맞게 외국 파견된 안기부 직원인 ‘영사’가 조작하여 작성한 ‘영사증명서’에 따라 유죄가 선고되었던 비극적인 일이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국정원이 ‘영사증명서’를 통해 ‘증명해야할 사항’을 ‘증명된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묘수로 ‘뮌히하우젠 트릴레마’를 해결하다보니 이제는 ‘뮌히하우젠 증후군’으로 나아갈 지도 모르겠군요.
이 증후군에 걸리면 병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지어내고, 마침내 자기도 그 이야기에 도취되어 버리는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수사기관이 증거를 위조한 행위는 범죄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원의 재판 제도를 부정하는 사건입니다. 게다가 타국의 공문서를 위조하는 행위라니요.
주권국가로서 품격은 어디로 간 것인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영사증명서, 군사독재 시절 비극이었던 한 장면이 이제는 희극으로 되풀이 되는 걸까요?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도 볼 수 없다.” 영사증명서가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