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래가 통일의 열쇠다
2013년 06월 03일(월) 00:00
김 하 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천년이 저물어가던 1999년 어느 봄날, 나는 베를린의 오스트 반호프(Ost Bahnhof)를 출발하여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향해 달리는 기차 안에 있었다. 약 7시간 걸리는 철마 안에서 차창을 통해 바라보던 구 동독지역과 폴란드의 이국적 풍경은 여행의 설레임보다는 임무의 중압감과 함께 신변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더해주었다.

그 무렵은 1980년대에 시작된 사회주의 붕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럽의 동부지역은 체제 전환의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였다. 당시 법무부 검사였던 내가 그 기차를 타게 된 것은 사회주의 붕괴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통일후 북한의 체제 전환에 대비하기 위한 자료수집에 목적이 있었다.

동유럽 민주화의 서곡을 울렸던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 감격적인 독일의 통일, 철의 장막 소련의 허망한 붕괴, 그밖에 체코·헝가리·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 등 동구 제국의 체제 개혁은 역사의 신이 새 천년을 맞이하기 위해 지나간 천년을 결산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대학생으로 지켜봤던 나는 검사가 된 이후에도 정권을 잡기 위해 광주시민을 학살한 정치 군인과 이들에게 머리를 빌려주고 기생하는 소수의 정치 관료보다 나쁜 국가지도자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베를린 동부지역에서 시작된 과거 사회주의국가로의 기차 여행은 나의 이러한 생각을 단번에 흔들어 놓았다.

패전국 독일에게 강요된 새로운 국경선인 오데르·나이세 강을 건너면서 시작된 창밖의 회색빛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어두움을 더해갔다. 불과 몇분 전에 떠나온 베를린의 화사한 봄빛은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어느덧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널따란 농지 가운데 이따금씩 나타나는 무채색 농가들의 초라한 모습은 마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였다.

그 때에 나는 처음으로 양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탈취한 반란군 못지않게 나쁜 정치지도자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강넘어 저편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전체 인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세상을 온통 잿빛으로 물들여 버린 정치 체제를 선택한 사회주의 국가지도자들. 그들이 바로 그러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이러한 나의 생각에 확신을 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2000년 봄 대북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북경을 거쳐 평양의 순안공항에 도착한 나는 다시 군용프로펠러기 AN2를 타고 함흥으로 날아갔다. 그곳에서도 7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한 끝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북한 내륙의 풍경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땔감과 식량을 얻기 위한 무분별한 벌목과 개간으로 북한의 산들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되어 있었다. 마을을 지나갈 때면 검고 퇴색한 옷차림으로 햇볕을 쬐러 도로변에 삼삼오오 서있는 북한 주민들의 무표정한 모습들은 마치 청동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어둡고 무거워 보였다.

모여있는 사람들 모두가 한결같이 남루한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북한의 지도자는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하였던 정치군인 못지않게 나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북한이 소련인들을 위해 지었다는 영빈관에서 1박을 하였다. 말만 영빈관이었지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전등은 촛불보다 어두웠다. 당시에도 북한은 식량난보다 극심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었다. 방문자의 접대도 이러할 진데 북한 주민들의 처지는 어떠할까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들은 이미 100년 전부터 국가의 폭정과 수탈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35년의 일제 식민통치와 68년의 공산 독재치하에서 논밭을 빼앗기고, 배급된 식량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왔던 것이다. 식량은 자연의 산물일 뿐이므로 굶어 죽는 것도 자연이 가져온 재해이고, 그것이 감히 지도자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들은 조상대대로 아직 국가의 주인이 되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없을 것이리라.

이런 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며 나는 동구권 사회주의체제가 모두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못한 북한체제가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유를 숙고해 보았다. 한마디로 북한 주민들은 해방 이후에도 이씨가 단지 김씨로 바뀐 조선왕조의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주민들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임을 깨닫기 전에는 북한체제는 조선왕조처럼 계속 굴러갈 것이다. 외세의 개입이 없는 한.

평화통일의 실마리는 북한 주민들의 주권의식에 대한 개안에 있다. 주권의식에 대한 개안은 북한 주민에게 자유의 공기를 무한히 주입시켜야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왕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결국 왕래가 조국통일의 열쇠인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김하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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