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근대사의 흔적과 한옥 … 그 살가운 포옹
2012년 12월 13일(목) 00:00
한옥 처마·일식 주택·서양식 성당 어울린 역사마을
구불구불 골목길 발끝 닿는 곳마다 넉넉한 전통의 품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시골 마을에 대한 향수가 있다. 시골에 있던 외갓집, 큰집을 찾기 위해 걷던 골목길과 돌담. 치열했던 봄·여름·가을이 지나가고 잠시 시간이 멈추는 겨울, 골목길을 채우던 나무 타는 냄새가 강하게 남아서인지 어릴 적 시골의 기억은 겨울로 남아있다. 포근함을 쫓아 시골의 그리움을 안고 겨울이 머물고 있는 전주 한옥마을을 찾았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교동 일대에 고운 자태의 한옥들이 처마를 맞대고 서있다. 한국의 미를 담고 있는 전주 한옥마을. 이곳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다.

1930년을 전후로 급속도로 이뤄진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한옥의 고운선이 일본식 주택과 서양풍 교회당 학교 등과어울려 있던 역사의 마을이다. 이제는 이곳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한국의 미를 느끼려는 관광객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관광 마을이 됐다.

한옥마을의 묘미를 만끽하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발길 가는 대로 그렇게 걸으면 된다. 구불구불 골목을 따라 대문과 대문이 이어져 있다. 돌담 너머로 슬쩍슬쩍 안을 내다보며 여유롭게 걷는 것 만으로도 좋은 길이다.

부채 문화관, 전통술박물관, 소리문화관 등 ‘이리오너라’를 외치지 않아도 문이 활짝 열려있다.

조선 마지막 황손이 머무르고 있는 승광재도 예외는 아니다. 열린 대문너머로 걸음을 옮기면 ‘일일이 손님을 맞지 못해 미안하다는, 언제든 차 한잔이 필요하면 전화를 주시라’는 주인장의 정겨운 편지가 기다리고 있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골의 겨울 냄새, 앙상한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붉은 까치밥, 활짝 열린 대문. 당장이라도 ‘내 새끼’라고 외치며 할머니가 버선발로 달려나오실 것 같다. 이제는 이곳에 없는 그리운 할머니가 달려나와주셨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포근한 풍경이다.

한옥 지붕을 이고 있는 커피숍과 음식점에서 허기를 채우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품고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눈이 즐거운 시간도 가질 수 있다.

한옥마을에서의 여유, 전동성당도 빼놓지 말자.

한옥마을에 들어서는 큰 길가에 우뚝 서있는 건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전동성당이다.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작은 종탑이 우뚝 서있는 붉은 벽돌의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호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다.

1908년 명동성당의 내부를 건축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착공에 들어간 뒤 1914년에 외관 공사가 끝났고, 1931년 완공돼 그해 6월 축성식이 열렸다.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장엄한 외관에 터지는 감탄사는 이내 숙연함으로 바뀐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둥근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에 절로 숨을 죽이게 된다.

눈썰미 좋은 영화팬들에게는 낯익은 곳일 것이다. 배우 박신양과 전도연이 열연했던 영화 ‘약속’. 두 운명의 주인공이 텅 빈 성당에서 올리던 슬픈 결혼식의 배경이 바로 전동성당이다.

시간이 멈춘 곳, 이곳에 동양과 서양의 역사가 함께 옛모습 그대로 현재를 달리고 있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면 전주한지박물관으로 발길을 해보자. 전주페이퍼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설 박물관으로 1·2층의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종이의 탄생 배경에 대한 영상을 본 뒤 쉬엄쉬엄 전시관을 둘러보며 종이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새로운 모습의 한지를 만날 수 있는 특별 전시회장도 마련되어 있다. 두 손으로 한지를 접할 수도 있다. 1층 체험실에서 직접 한지를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종이 원료가 담긴 지통에 틀을 넣고 살살 흔들면 한지를 만날 준비가 끝난다. 발에서 분리한 종이를 탈수기에 올려 물기를 제거하고 건조기에서 말리면 한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박물관 기념 스탬프를 찍으며 나만의 한지가 완성된다.

/글·사진=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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