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의 허상
2012년 09월 10일(월) 00:00
김영용
금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 핵심 경제 이슈는 경제민주화이다. 이른바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개혁이 요체인데, 그 중에서도 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출자구조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총수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경제민주화는 우리 헌법 제119조 제2항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 개념이 모호하다. 언어는 의사소통 도구의 차원을 넘어 그 자체에 개념과 사상을 담고 있는데, 경제민주화라는 용어에는 분명한 개념이나 사상이 들어 있지 않다.

또한 경제민주화는 ‘경제’와 ‘민주’라는 양립(兩立)할 수 없는 두 단어를 조합해 놓은 것이다. 이해 당사자들만 참여하는 경제적 의사결정 방식과 이해관계가 있든 없든, 특정 사안에 대해 잘 알든 모르든,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을 합친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좋은 정책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지배구조란 자본을 출자한 주주들이 경영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운영하도록 규율하는 메카니즘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총수는 지배주주이자 최고 경영자이다. 그런 만큼 다른 어떤 주주보다도 이해관계가 가장 크게 걸려 있어 기업의 흥망성쇠에 가장 노심초사하고 주인-대리인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총수를 중심으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바람직한 지배구조라고 할 수 있다. 지분의 다소는 문제가 아니다.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다면 계열사 간 출자구조 또한 문제 삼을 것이 없다. 출자구조는 오랜 세월 동안 기업이 성장하고 사업 분야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변화하는 기업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 달라 그룹별로 출자구조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사항은 출자구조가 아니라 사업을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그룹인 삼성과 현대차는 순환출자 구조(A기업→B기업→C기업→D기업→A기업)로 되어 있다.

출자구조를 문제 삼을 논거가 없는 마당에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려는 의도로 계열사 간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규제를 다시 도입하려는 것도 논거를 가질 수 없다. 이는 한 계열사(A)의 다른 계열사들에 대한 출자를 A가 가진 순 자산(다른 계열사에서 받은 출자액을 제외한 자산)의 일정비율(과거의 경우 25% 또는 40%) 한도 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투자 위축과 외국 자본에 대한 자국 자본의 역차별,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벤처 캐피탈리스트로서의 기능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경쟁의 양상이 기존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해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업종 자체를 대체해버리는 방식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우리의 기업들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중소기업 적합 품목을 선정하는 것도 상업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누가 어떤 품목을 만들지는 소비자들에 의해 판가름 나는 것이지 몇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등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핍박한다는 주장도 거래란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착취할 수는 없다.

예전에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살았던 아르헨티나 경제는 페론 대통령 집권 이후 크게 망가졌다. 페론 대통령이 사람들의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제한하고 분배 우선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오쩌퉁 치하에서 굶어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던 중국은 지금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사유 재산을 널리 인정하고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잘 살고 못사는 이유로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업 이윤은 소비자들에게 봉사한 대가이다. 돈을 많이 벌고 기업집단이 성장한 것은 소비자에게 크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 기업들은 지금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잘 나가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일이 작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헤쳐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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