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남녀 나체 군무 … 태양신에게 多産을 빌다
2012년 08월 06일(월) 00:00
<14> 탐갈리 암각화
1800ha 바위산에 3천여개의 암각화
청동기∼철기 가축사육·생명 잉태 등
문자 없던 시절 풍습 계승 등 기록 성격
亞문화추진단 콘텐츠화 가능성 모색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기점으로 160㎞ 거리에 있는 탐갈리 암각화. 변성암에 새겨진 물소와 산양, 늑대, 수렵하는 인간의 모습을 새긴 암각화 지대를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카자흐스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와 몽골 중서부 지역은 세계적인 바위그림(암각화)의 보고다.

선사시대의 메모리칩으로 불리는 바위그림은 카자흐스탄에 유독 많다. 무려 50여개 지역에서 암각화가 발견돼 보존되고 있다. 바위그림은 바위를 쪼아 새긴 암각화(岩刻畵)와 채색으로 그림을 그린 암채화(岩彩畵) 두 가지가 있으며, 카자흐스탄에는 전자가 많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탐갈리(Tamgaly) 암각화는 천연의 캔버스에 남겨진 고대인류의 생활상으로 통한다. 탐갈리는 카자흐스탄 말로는 ‘그림 그려진, 흔적이 새겨진’이라는 뜻이다.

탐갈리 협곡에는 청동기에서 철기시대에 걸쳐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고대인류의 토템과 희생제의, 가축사육·도축, 생명의 잉태 등 삶의 모든 모습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암각화가 지천이다. 고대 문화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렌슬렛 호그벤 교수가 저서 ‘동굴벽화에서 만화까지의’에서 강조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남긴 카자흐스탄의 암각화는 우리나라 학자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다.

동북아역사 재단은 지난해 카자흐스탄 남부 쿨자바스이의 바위그림인 ‘깃발 든 기마병’을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원 전후부터 3∼4세기까지 중앙아시아와 몽골을 중심으로 퍼진 ‘달리는 기마병’ 암각화는 비슷한 시기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안악 3호분과 덕흥리고분 벽화는 창을 든 기마병이 말을 타고 달리는 순간을 담은 것이다.

광주 아시아문화중심 도시 조성사업을 맡고 있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아시아 지역 암각화의 문화적 가치발굴과 콘텐츠 자원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 지역 암각화에서 만화,영화에 등장할 캐릭터를 발굴하는 등 문화 컨텐츠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탐갈리 암각화는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로 유명한 ‘오리냐크’기 문화를 일군 사람들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청동기 인류의 작품들이다. 카자흐스탄에 터를 잡았던 사카족의 조상들이 남긴 청동기∼철기 시대 그림들이다.

바위동산들이 연이어 펼쳐져 있는 암각화 분포지는 무려 1800ha 달하며, 바위그림은 3000여개를 헤아린다. 탐갈리 계곡에 있는 비바람에 깎인 평평하고 수직으로 뻗은 변성암은 원시예술의 캔버스였다.

고대인류가 암각화를 제작한 것은 전승의 의미가 크다. 문자가 없던 시절 자신들의 풍습을 후세에 계승하고, 이를 기록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탐갈리 유적지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태양인간’이다. 머리 부분은 태양을 형상화한 것이고 나머지는 인간의 체형을 그린 형태로, 커다란 해바라기를 연상시킨다. 현지 고고 학계에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등장한 토템의 인간화”라고 가치를 평가한다. 태양신과 인간의 결합체라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튀르크족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늑대 토템의 기원도 더듬어 볼 수 있다. 튀르크계 신화에서는 늑대가 버려진 영웅을 젖을 먹여 키웠다는 늑대소년 이야기, 수호자로서 늑대 등이 종종 등장한다. 우즈베키스탄의 민족영웅 알파미시를 보우(保佑)하는 동물도 늑대다.

12여명의 남녀가 나체로 집단 군무를 펼치면서 태양신에게 자손 잉태를 기원하는 장면은 원시예술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다. 성행위와 임신·출산의 전과정, 그리고 새생명을 잉태하는 사람들의 주술적인 춤을 묘사한 그림이다.

탐갈리에는 남녀간의 적나라한 성행위를 묘사한 그림 등 생명의 탄생의 신비를 기록한 그림들이 많고, 성기를 과장되게 표현하는 원시예술의 형태도 보인다.

탐갈리 암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샤먼의 모습은 늑대토템이 존재했음을 방증하는 그림이다. 이들은 늑대가죽을 쓴 채 희생제의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한다. 늑대가 가축들을 공격하는 경계대상이지만, 그럼에도 신성한 대상물로 숭배되는 고대문화의 이중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소와 말 등이 태양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그려놓은 것은 신을 숭배하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것들이다.

동물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의는 동굴벽화, 암각화의 단골 소재지만, 인간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흉기로 살해하는 장면은 이채롭다.

여느 암각화에서 볼 수 없는 치열한 인간군상들의 전투모습, 적군의 발목을 절단하는 고대의 풍습도 담겨 있다. 녹용을 채취하는 장면도 등장하고, 말떼를 몰고 가는 장면 등 유목의 전통을 보여주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카자흐스탄=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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