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정신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2년 05월 21일(월) 00:00
우리 조상들은 형태로 사유를 했다. 소리를 낼 때의 입의 형태를 언어로 만든 세종 한글의 근간이 되는 천지인 사상은 하늘을 점, 땅을 수평선, 사람을 수직선으로 간소하고 편리하게 기호화되어 있다. 한족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한글의 탄생처럼 지금 한창 공사 중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땅끝 어귀에 혼신을 다해 못을 파고 있다. 장차 빛을 품어낼 공간을 음각으로 파고 있는 것이다. 전당 건립의 뜻을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새로운 발견을 제공해 준다.

이 부지는 하늘의 별을 닮은 오각형의 펜타곤처럼 생겼다. 16세기까지 서양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별의 숫자와 지상에 있는 풀의 숫자가 같다는 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만큼 하늘에는 정말 별이 엄청 많다. 별들도 풀처럼 태어나고 사라짐을 반복한다. 과학 상식에는 사람이 속해 있는 우주에는 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는 천억 개의 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연구에는 평행 우주라 하여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하니 별은 무한수로 많은 셈이다. 또 가상 현실처럼 우리 각자의 일상과 아주 닮은 일상이 다른 우주에서 펼쳐지고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광주를 우주라고 하면, 지구는 샤프 연필의 끝점보다도 작다.

광주와 대한민국이 하늘에 못을 팠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저 멀리 스키타이에서 훈(흉노)과 몽골을 거쳐 에스키모와 인디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조상들은 하늘을 가장 성스러운 존재로 여겼다. 또 그 하늘은 단순히 자연의 하늘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여 몽골어에서는‘텡그리’라 부른다. 가장 가까운 시조인 단군의 어원이 바로 이 성스런 단어인 텡그리에서 온 말이니 그 뜻이 바로 하늘이다. 인종적으로 알타이계는 모두가 하늘을 섬겼던 자손이다. 800년 전에 이미 21세기를 살다간 징기스칸은 생전에 ‘영원히 푸른 하늘’로 칭송되었다.

역사적으로는 문화전당의 장소는 세속적인 권력이 응집된 곳이었다. 그 시간대는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권에 있던 통일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 시대에는 광주읍성의 일부로 지방 통치의 거점 건물들, 광주목의 관아들이 있던 곳이다. 그 뒤에도 지역 권력이 집약되어 있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구도청 건물이라 부르는 것은 하나의 단일한 건물이 아니라 여러 건물들이 모여 있는 건물군으로, 1930년에 처음 설계되었다.

이 도청 건물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인식은 1980년 5월에 대한 기억을 매개로 형성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용기있는 시민들의 거센 저항과 탄압적인 국가 권력이 대치한 국면에서 신군부의 방어선이 무너진 역사적 급변이 발생했다. 5월 22일부터 일주일간 이 건물은 국가권력의 지방 통치를 위한 용도가 아니라 시민들의 힘으로 접수된 자치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도청지휘부와 기동타격대는 본관과 별관에 각기 진을 치고 5월 27일 최후의 새벽 전투를 맞아 도청이 마지막 보루가 되었고 수많은 시민군이 피흘리며 산화했다.

‘현재’의 심장을 겨눈 이 영원한 기념비적 장소는 민주주의를 수호한 피의 제단이다. 조선 이래 수백년간 세속 권력들이 응집되어 있던 지리적 정치적 장소가 80년 5·18 이후 시민에 의해 탈권력화의 ‘성소’로 변했고, 항쟁 기억의 집이자 이 기억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장치로 탈바꿈했다.

우리는 이 엄청난 긍정의 변화를 모든 부정적인 형태의 삶을 바꿔나가는 가치로 승화시키고, 그 가치를 항상 현재형으로 취해야 한다. 문화전당은 그 것의 싱크탱크역을 수행할 아시아문화개발원와 함께 문화중심도시조성 사업의 두 축으로 공식 비전은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라는 정체성의 바탕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이 아시아의 도시발전 패러다임을 창출하려는 야심찬 헤게모니 프로젝트와 어떻게 조화를 이뤄낼 것인지는 쉽지 않은 과제다. 또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광주를 미래형 경제도시로 만들겠다는 강한 포부가 인권과 문화를 정치/행정권력과 문화산업에 종속시키는 시스템 구축과 그것의 반복 재생산으로 가질 않도록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이 국책 사업은 반드시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대화형 프로젝트로 가야 하며, 민과 관, 국내외의 민간 전문인력이 열정적으로 협력하는 개방적인 프로젝트로 빨리 전환시키지 않으면 밀실 행정이라는 비난과 함께 자칫 큰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이영철아시아문화개발원장〉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