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민으로 가는 길
2010년 10월 18일(월) 00:00
21세기는 국가 경쟁력이 문화수준에 따라 좌우되는 ‘문화의 시대’ 라고 한다. 지난 참여정부는 ‘창의 문화 한국’에 대한 거창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문화의 중심에는 창의성이 강조되며 창의적 능력의 정도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제시한 ‘창의 한국’ 프로젝트는 화려한 누각과도 같다. 광주의 문화중심도시 백서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창조적 실용성을 강조하면서 예술적 창의성과 첨단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문화콘텐츠 창출을 중점 추진방향으로 설정했다.

이 같이 광의로 접근한 문화의 개념에 따라 추진하는 문화발전 전략에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 하나는 지나친 문화콘텐츠의 다변화에 있다.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에 초점이 맞춰 있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문화의 경제성을 고려할 때 그 중심에는 예술의 영역이 존재한다. 예술은 문화상품의 소스(source)가 되고, 이 소스를 문화상품화 하는데 요구되는 주변 관련 영역들이 참여하는 형식을 띠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따라서 광주문화중심도시 건설이라는 과제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술영역을 중심으로 하는 궤도수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광주가 국내 타도시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것이 무엇인가? 비엔날레만 해도 부산 비엔날레, 대구비엔날레가 열리는 상황이다. 서울·경기지역의 빈번한 국제적인 전시회 개최 속에서 얼마나 차별화를 시킬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예술문화를 중심으로 초점을 모아야 한다. 사실은 예술의 영역만 해도 시각예술, 청각예술, 공연예술 등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컬러의 문화 코드가 존재한다. 예술중심으로 재구성하더라도 결코 왜소하지 않다. 예술과 새로운 기술이 결합하거나, 예술과 다른 문화요소들이 만나면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하여 시너지효과는 무궁무진하다.

후자의 경우 지난 정부에서 제안한 ‘창의 한국’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현 정부가 문화 국가를 이룩하겠다며 추진하는 제반 정책들로도 본질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다. 예술문화의 발전은 문화 향유자에 의해 결정된다. 즉 문화 소비자층이 얼마나 두텁게 형성되고 있는지, 그리고 문화향유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관심의 초점이 어느 문화코드에 모아져 있는지가 문화발전의 양상을 결정하는 주요인인 것이다.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민족은 소비가 아닌 문화의 향유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한다.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사람은 멋을 아는 사람들이며, 감성이 풍부한 그들의 삶은 다분히 낭만적이다. 러시아에서의 태교 중의 태교는 ‘푸시킨’의 시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들은 ‘푸시킨’의 시 한편을 읊으면서 행복에 취한다.

일본인들의 문화향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물론 단편적인 주장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몇 년 전에 도쿄 우에노 공원 내에 있는 모리미술관에서 겪은 일이다. 호안 미로전이 열리는 주말이었다. 미술관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린 지 2시간 만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관 안에 들어서서야 왜 그토록 오래 기다렸는지 알 수 있었다. 평범한 중년, 노년층의 감상자들이 한 작품 앞에서 보통 5∼10분 동안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같이 동행했던 우리 미술대학생들은 2시간 기다려서 입장한 후 20분 내에 감상을 마치고 미술관을 나왔다.

일반시민들의 문화향유실태는 어떠한가? 단편적으로 문화를 경제논리로만 접근하여 문화를 상품화하려는 목적에만 급급한 나머지 가장 우선시되어야하는 순수 문화향유에 대한 가치가 외면당하고 있다. 현대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무너졌지만 여전히 다양한 스펙드럼을 이루며 고급문화는 존재하고 있다. 고급예술문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예술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소양을 기르는 학교교육의 붕괴는 고급예술문화의 향유에 대한 무관심과 더불어 문화산업발전에도 결국 한계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산업은 자양분이 풍부한 토양 위에서만 최상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출범 이후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지만 관객은 없다. 관객 구걸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이런 심각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적인 결단이 없이는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급예술문화를 향유하는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갈수록 그 기대에 부응해가며 예술문화의 수준은 발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박상호 조선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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