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무죄로 추정되는가
2010년 09월 27일(월) 00:00
헌법재판소는 지난 2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확정판결이 있기 전이라도 업무를 정지하게 한 지방자치법 조항에 관해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이 위헌이라며 지난 6월 헌법소원을 냈던 이광재 강원도지사는 이번 결정에 따라 업무에 복귀했다.

그 결정의 주요 논거는 해당 지방자치법 조항이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여 피고인의 무죄추정원칙을 명시하고 있고 같은 내용이 다시 형사소송법에도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피고인을 소송의 주체로 보지 아니하고 소송의 객체로 인정하였던 과거의 이른바 원님재판에서는 유죄의 증명이 불분명한 경우에도 피고인을 처벌하였다. 이러한 소송절차 아래에서는 피고인의 방어권이 인정될 여지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프랑스 혁명의 소산인 권리선언에서 ‘누구든지 유죄의 선고를 받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최초로 규정된 후 각국의 민주헌법에서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1981년의 제5공화국 헌법에서 최초로 무죄추정원칙을 입법화하였다.

형사피고인이 소송절차에서 무죄의 판결을 받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유죄의 판결을 받게 된다. 이러한 통계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원칙을 규정한 것은 법원을 비롯한 형사사법기관이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함에 있어 실제적인 효력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국가의 형벌권은 국민의 신체, 재산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침해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실현과정에서의 오류를 없애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다.

무죄추정원칙은 재판단계에서의 유무죄의 판단기준이 될 뿐 아니라 수사단계에서의 구속 등 강제처분에 대한 제한요소로 작용하며 미결구금자의 처우에 대한 기준이 되기도 하는 등 형사 절차의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지도원리이다.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에는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만을 적용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단순히 범죄의 혐의만을 받고 있는 피의자에 대하여도 이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되므로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인에게 무죄판결을 하여야 한다. 형사소송절차에서의 유죄의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형사사법권은 국가와 사인 간의 절차로서 국민의 재산, 신체, 생명권에 대한 침해를 수반하므로 다소라도 의심이 남으면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는 엄격한 제약을 받는 것이다.

물론 피고인은 자신의 무죄를 적극적으로 주장·입증할 필요는 없고 침묵으로 대응하여도 무방하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진술거부권도 이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나오는 것이다.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되므로 법원에 대하여 유죄의 예단을 주어서는 안 되고 법원도 예단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공소장에는 법령이 요구하는 사항만 기재하여야 하고, 공소사실과 관계없이 법원의 예단만 생기게 할 사유를 불필요하게 나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또한 검찰, 경찰 등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와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한 때에는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된다. 피고인의 형사절차에 관한 서류는 공판 전에는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하고, 공소장에는 법원으로 하여금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여서는 안 된다.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 받으므로 수사 및 재판도 불구속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구속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피고인이 일단 구속된 뒤라 하더라도 구속의 필요성이 없어지면 즉시 불구속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구속적부심제도나 보석 제도 등은 무죄추정원칙의 제도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무죄추정원칙은 나아가 구속된 자라 하더라도 도주 및 증거인멸의 방지를 위하여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 외에 다른 고통을 주는 것을 금지한다. 피고인에게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을 보장하는 것도 이러한 요청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수사나 재판 현실에서 보면 피고인이나 피의자가 과연 무죄로 추정되는지 의심이 갈 때가 많이 있다. 오히려 유죄로 추정되지나 않는지 의심 가는 경우마저 있다. 맨 앞에서 본 지방자치법 조항이 2002년 7월 1일 발효된 이래 지금까지 별 의심 없이 적용되어 온 것은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함을 잘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구길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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