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과 선군(先軍)정치
2008년 12월 07일(일) 23:59
북한이 단계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과거로의 투항이지, 결코 미래를 향한 저항이 아니다. 과거의 포로임과 동시에 과거로의 회귀이지, 미래의 개척이나 미래로의 항해는 더더욱 아니다. 경제를 살리는 희망의 행보가 아니라, 절망의 비틀거림 그 자체인 것이다.
개성공단이 들어선 자리는 북한군이 남쪽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연습을 했던 북한의 군사기지였다. 그런데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군사기지를 공업지구로 바꿔 내는데 성공했다. 소위 총을 녹여 쟁기를 만든 셈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영토 일부가 팽팽한 긴장과 적대의식이 넘쳐 나는 전장(戰場)에서 순식간에 화해와 상생의식이 넘쳐나는 시장(市場)으로 변해 갔다.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선 한반도에서 개성공단은 평화의 심벌이었다. 개성공단이라는 남북한 경제협력생산기지가 가동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지수는 그 만큼 높아졌다. 이는 많은 해외투자자들을 한국으로 유인해 오는데도 상당한 효과를 가져다줬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북한의 군사기지들이 공업지구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런 기대의 결과로 나온 또 하나의 선언이 10·4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해주공업지구에 대한 개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에는 돈을 쥔 기업인이 아니라 다시 총을 든 군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지역이 냉전의 군사기지로 되돌아갈 모양이다. 참으로 불행스런 징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이 행군은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끝모를 굶주림의 행군이다. 북한 지도층 간부들은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조금만 더 졸라매자고 설득한다.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졸라맬 구멍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지도층 간부는 “동무, 허리띠에 새로운 구멍을 하나 더 뚫어서라도 졸라매면 되지 않습네까”라고 말한다.
이런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녘 동포에게 개성공단은 고난의 행군을 끝장내는 희망의 창이다. 그래서 개성공단의 대문을 더욱 활짝 열어 나가야 한반도 평화의 공간은 넓어지고 북녘 동포의 고통은 줄어든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절대로 문 닫아서는 안 되는 이유인 것이다.
개성공단의 문을 닫으면 김정일 위원장이 경제특구를 설치하여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에 역행한다. 북한의 7·1경제관리개선조치에 반하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도 반한다. 북한이 그토록 주장해왔던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도 어긋나며, 북한에 대한 남쪽 국민들의 불신만 높여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는 급추락할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와의 핵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아 남측 입주 기업인들이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누구를 원망할까. 당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남쪽 국민들의 동정과 지지를 얻지 못한다. 오히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에 대해서 남쪽 국민들의 조언이 이어질 것이다. “원래 북한이 그런 곳인지를 모르고 그곳에 갔었나요.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러십니까.”
남한 기업들은 아무도 북한에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텅 빈 벌판에 경제특구를 설치해 봐야 아무도 북한에 가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인 동물로 정평이 나 있는 일본 기업들이 이 지구상에서 아직 들어가지도 않고, 투자도 하지 않은 두 곳이 있다고 한다. 그 한 곳은 미국 CIA이고, 나머지 한 곳은 북한 이라고 한다. CIA에 들어가면 자신들의 경제정보를 잃게 되고, 북한에 들어가면 돈을 잃게 된다는 ‘손해의 확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제 선군정치(先軍政治) 보다는 선경정치(先經政治)를 우선시해야 하지 않을까. 개성공업지구가 폐쇄되어 그곳이 다시 군사기지로 전락하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그곳에 가고 싶은 호기심을 가질까. 북한은 개성공단의 대문을 서서히 닫을 것이 아니라 더 활짝 열어야 한다.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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