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에 즈음한 단상
2007년 07월 08일(일) 19:15
최근 심리학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다. 심리학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의 체계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학문이다. 대학 시절에 들었던 심리학은 거의 생물학에 가까워 지루했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그리 딱딱하지 않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소개된 심리학 이론 가운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흥미로울 법한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는 인간이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성향을 다룬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실을 부정하려는 경향에 관한 것이다.
먼저 달리와 라타네라는 두 명의 심리학자의 실험을 보자. 이들은 피실험자와 배우 역할을 맡은 두 명이 한 방에서 함께 설문지를 채우도록 한 뒤 인체에 무해한 연기를 흘려 보냈다. 피실험자는 연기에 놀라 당황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태연하게 설문지를 계속 채운다. 피실험자는 두 사람의 태도를 보고 실험이 종료될 때까지 연기가 난다고 신고를 하지 않는다. 즉 발생하는 현상을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태도에 의존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 것이다.
또 인지 균형이론의 하나인 인지 부조화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인지의 모순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인지 부조화이론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가 1957년에 발표한 것인데, 인간은 인지체계의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현상에 의해 인지 부조화가 발생할 경우 자신의 믿음을 바꿀 수 있고, 현상을 부정하거나 왜곡할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극단적인 사례로는 예언된 날짜에 종말이 오지 않자 자신들의 믿음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대신, 신께서 예정을 바꾸었다고 주장하는 종말론자들을 들 수 있다.
우리는 현실에서 다양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갖게 된다. 그런데 심리학 이론에서 유추하면, 자신의 견해라는 것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태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하락하여 주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상황에서 뚜렷한 판단 근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인을 비난할 수 있다. 다수와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하여 따돌림을 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치인을 반대하는 여러 이유를 댈 수 있지만, 대개 막연한 주장이거나 반대자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경우가 많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감이나 지지도가 급상승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찬성하거나 반대할 이유를 꼼꼼히 따져보기 보단 정치적 무관심이 이런 경향을 증폭시킬 수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쳤건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입장을 결정했다고 하자. 이후에 자신의 입장에 반대되는 증거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심리학 이론이 시사하는 바는 반대 증거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 증거들이 계속 드러나면 결국 자신의 입장을 바꾸게 되겠지만, 당초의 지지 또는 반대 입장이 강할수록 실상을 부정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비리혐의를 반대측의 모함이라고 부정하거나 그 정도는 문제될 게 없다고 무시하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으로 같은 행위에 대해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좋게 해석하고,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악의적으로 폄훼할 수 있다.
흔히 정치 무관심 시대라고 한다. 사실 정치인들이 환멸을 느끼게끔 행동하기도 했다. 그래도 정치는 중요하다. 정치권의 결정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이고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을 앞두고 독립적인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정립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의 타당성을 따져 보는 것이 성숙된 시민의 자세다. 심리학 이론들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잘 설명해 줄 지 모르지만, 이런 경향을 줄여야 정치와 사회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박현수<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