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안 리포트 <5> 한가족 3개국 며느리 올라소.서영숙.야호씨
2007년 02월 14일(수) 11:45
“올 설엔 4개국 전통음식축제 열래요”
김씨 가족이 ‘온누리안’이 된 것은 지난 199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남인 김종일(44·장성군 서삼면)씨가 당시 통일교를 통해 필리핀 출신의 테레사올라소(44·이하 올라소)씨와 결혼하면서 외국인 며느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같은 해 7월 차남인 김종범(43)씨가 중국 길림성 출신의 서씨와 결혼한 데 이어 지난 2005년에는 3남1녀 가운데 막내인 김종남(34·광주시 서구 월산동)씨가 베트남 출신의 야호(27)씨와 결혼하면서 아들 세 명 모두 ‘온누리안’ 가정을 이뤘다.
하지만 여느 ‘온누리안’ 가정이 그렇듯이 김씨 가족도 출발부터 순탄치 만은 않았다. 특히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만큼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해프닝이 심심치 않게 빚어졌다.
우선 한국생활 초기에는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큰 며느리 올라소씨와 둘째 며느리 서씨도 지난 1999년 첫 만남에서는 수줍게 눈인사만 건넸을 뿐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부엌일을 함께 하면서 친숙해진 뒤에도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결혼 8년째로 접어든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올라소씨와 서씨는 이제 서로 눈짓 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곤 한다. 의사 소통이 한결 수월해진 것은 물론이고 서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고 있다는 동질감으로 인해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된 것이다.
김씨 가족은 이처럼 세 명의 ‘온누리안’ 며느리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가족에 대한 의미를 새삼 알아가고 있다. 또 각각 국적이 다른 ‘온누리안’ 가정을 꾸림으로써 다양성을 갖춘 한국의 새로운 가정으로 거듭나고 있다.
올라소씨는 한국의 전통적인 ‘맏며느리’라는 동네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특히 지난 2001년에는 건강이 악화돼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했다. 또 둘째 동서와의 정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가장 늦게 한국에 온 막내 동서가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생활에 대해 서운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시부모에게 손자를 안겨드리지 못한 데다 한국사회 일각에 아직도 남아 있는 동남아인에 대한 시선이 늘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결혼 이후 3∼4년간은 의사소통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장성읍내에 위치한 육류가공 회사에서 근무하며 새로운 한국생활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
둘째 며느리 서씨는 현재 광주시 광산구 운남지구에 위치한 외국인근로자선교회의 사무국장을 맡을 만큼 어엿한 한국인이 됐다. 워낙 한국말에 능통한 데다 사교적인 성격 덕분에 주위에선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같다’는 우스갯소리도 듣곤 한다. 서씨가 이처럼 한국에 빨리 적응한 것은 친정아버지가 경상북도 출신인 데다 자신이 연변대학에서 조선어문학부(조선문학사)를 전공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컸던 것이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서씨 역시 한국생활 적응이 쉽지 많은 않았다고 회상한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태어난 나라가 중국이었던 만큼 음식이나 문화적인 차이를 실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결혼 초기에는 김치에 들어가는 젓갈이나 깻잎 등을 먹기가 쉽지 않을 만큼 의외로 음식에 대한 적응이 힘들었다.
이럴때 마다 남편과 아이들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후원자가 됐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 수용(8)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 유리(6)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향수병’ 조차 느낄 겨를이 없다.
서씨는 “이주여성들의 상담을 받다 보면 여전히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배려보단 한국사회를 일방적으로 이해하라는 성향이 강한 것을 느낀다”며 “요즘은 막내 동서가 이같은 보이지 않는 ‘장벽’보단 한국의 좋은 문화를 먼저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막내 며느리 야호씨도 이같은 ‘형님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비록 한국생활이 1년6개월 밖에 안됐지만 시댁과 남편의 지인들과 가깝게 지내며 ‘한국알기’에 한창이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예쁜 딸까지 낳아 남편 김씨와 함께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다.
시어머니 박화자(67)씨는 “처음 큰 며느리를 들일 때만 하더라도 기대보단 걱정이 앞선던 것이 사실”이라며 “며느리들이 모두 착하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choic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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