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가정’의 의미
2007년 02월 04일(일) 19:07
국회 법사위가 오는 26일 ‘가정’에 관한 공청회를 연다. 상당수 국민이 정치와 경제에 몰입되어 있는 요즘 ‘가정’이라는 주제가 매우 생경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가정’이라는 주제는 정치와 경제 이상으로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포괄하는 기본적인 틀에 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국회에서 새삼스럽게 ‘가정’을 둘러싼 주제를 가지고 찬반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하는 것은 시행된 지 불과 2년밖에 안된 ‘건강가정기본법’을 폐지하고 새롭게 ‘가족정책기본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여성계에서 일면서 이른바 ‘건강가정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상정되었고,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정치적 이슈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하마터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으므로, 이 법률안을 두고 공청회를 열겠다는 법사위의 결정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가족정책기본법’은 겉모습만 보면 기존의 ‘건강가정기본법’을 계승하면서 이를 보완하는 듯 하지만, 사실상 이들 두 법률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정’을 둘러싼 엄청난 시각의 차이가 숨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문제의 ‘가족정책기본법’은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건강가정기본법’의 기본정신을 해체하면서, ‘가정’의 틀을 완전히 없애고 ‘가족’의 개념만을 염두에 두려는 것이다.
가정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이를 수용해 나가자는 데에는 반대가 있을 수 없다. ‘건강가정기본법’은 이미 이와 같은 대화의 문호를 개방해 놓고, 가정해체를 둘러싼 제반 문제들을 예방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대안을 담고 있다.
이를 폐지하고 전혀 새로운 법을 만들고자 하는 데는 ‘가정’을 오로지 속박의 굴레로만 규정하고 이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논리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국가와 사회가 부담하여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고가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와 장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이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새로운 법률안은 가정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피해가는 회피적 방법이다. 매우 부정적이며 파괴적이다. 현재 대다수의 국민이 여전히 행복한 ‘가정’을 원하며, 이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추어 양성평등의 민주적 가정을 만들고, 육아와 자녀교육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공동 대처하며,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으로부터 억압과 책임이 아니라 생활의 활력을 느끼는 가정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하여 필요한 절차와 방법을 담고 있는 것이 기존의 ‘건강가정기본법’이다.
요즘 많은 국민들은 가정 해체로 인해 가족들이 방황하는 상황이 올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이혼과 독신이 점점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저출산 극복이 심각한 국가적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지금, 바람직한 가정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남성과 여성 모두 가정을 갖고 싶어하도록 만들고, 그런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국가와 사회의 도움으로 해결해나가겠다는 것이 ‘건강가정기본법’의 기본 취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건강가정기본법”의 폐지를 강력히 반대한다. 그러나 국민의 대다수가 ‘가족정책기본법’의 취지에 동의한다면 그에 승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대의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논의에서도 ‘건강가정기본법’의 폐지에 대하여 반대 의견만 있었고, 대한노인회를 비롯한 각종 단체 및 종교계에서도 역시 반대하고 나섰다.
따지고 보면 ‘가정’과 관련된 논쟁이 있게 된 것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가정’의 의미와 바람직한 모습, 그리고 그런 가정을 위해서 고쳐야 할 것과 힘써야 할 일을 되새겨 보는 좋은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부디 진지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바탕으로 건강한 가정이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김화중〈전 보건복지부 장관·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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