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군인 그리고 공습경보
2003년 04월 08일(화) 00:00
한적한 농촌마을에 느닷없는 사이렌이 울린다. “아니 그 놈들이 또 온다고” 집에서, 밭에서, 논에서 일하던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 흥분한 동네사람들이 호미, 갈퀴, 쇠스랑을 들고 달려 온다. 금방 50~60명은 될듯 싶다.
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해남군 산이면 대진리 일대의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의 집단행동 모습이다. 해군이 이 일대에 통신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공사장비를 들이 밀면 공습경보처럼 동네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이 한순간에 몰려드는 실제상황(?)이다.
대진리 간척지를 포함한 90만평에 해군이 군사기지를 건설키로 하고 농수산부와 이미 토지사용계약까지 마쳤다고 알려진 후 인근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군인들이 나타나면 매일 현장으로 출동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당국이 당초 풍요로운 바다와 갯벌덕분에 잘 살고 있는 어민들에게 식량증산을 이유로 바다를 막아 농경지로 만들어 분양을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선 이제 와서 이곳에 군사기지를 만든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 대책도 없이 어느날 어부를 농부로 만들더니 이제는 바다고 땅이고 없어져 버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기지는 국가보안상 비밀이며 무조건 국가차원에서 시설을 해야하니 양보하라는 태도에 주민들은 더욱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라면 주민들에게 사전에 이해를 구하고 최소한 생계대책을 세워줘야 하는데도 주민생업은 논외인 모양이다. 아무리 이 간척지가 사업이 덜 끝나 공유수면이라고 할지라도 현재 농사를 짓고 있고, 바다가 있을 때는 대대손손 생업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하루아침에 군사시설을 세운다며 몰아부치고 있으니 포크레인이나 컨테이너 밑에 누울 수 밖<에 없는 주민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朴正玉<사회2부 부장 해남>jo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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