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만의 재즈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역할 하고 싶어”
2026년 02월 01일(일) 20:30 가가
2026 꿈을 쏘다 <4> 화순 출신 드러머 신원주
수도권 진학 없이 화순서 ‘드럼’ 배워
버클리음대 합격…대학원 프로그램 준비
‘남도 재즈 페스티벌’·‘DM 콘서트’ 기획“지역 음악문화에 기여” 아름다운 포부
수도권 진학 없이 화순서 ‘드럼’ 배워
버클리음대 합격…대학원 프로그램 준비
‘남도 재즈 페스티벌’·‘DM 콘서트’ 기획“지역 음악문화에 기여” 아름다운 포부


화순 출신 드러머 신원주 씨는 “화순만의 재즈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닦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씨가 직접 기획에 참여하고 무대에 오른 ‘남도 재즈 페스티벌 in 화순’ 공연 장면. <두루아트 제공>
“재즈는 미국의 음악으로만 한정할 수 없는 장르입니다. 스페인에는 스페인의 재즈가 있고, 프랑스에는 프랑스의 재즈가 있듯 화순에도 화순만의 재즈가 있죠. 앞으로 이곳에서 재즈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작은 역할이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화순 출신 드러머 신원주(21)는 재즈를 중심으로 연주와 교육, 작곡, 기획까지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청년 예술가다. 지역 청년들이 결성한 음악단체 ‘두루아트’의 대표로 활동하며 지역 문화 현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수도권으로 이동하지 않고 화순에서만 드럼을 배워,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에 합격한 이력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자는 최근 버클리 음대를 잠시 휴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신 씨를 만나 지역에서 음악을 이어가는 선택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 씨가 드럼과 처음 만난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통기타를 배우고 싶어 신청서를 냈지만, 악기를 정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이 그의 허벅지를 보더니 “너는 드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손에 쥔 드럼스틱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신 씨는 드럼의 매력을 ‘직관성’이라고 설명한다. “제가 가진 에너지나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복잡한 생각을 거치지 않고, 몸에서 곧바로 소리로 옮길 수 있다는 점이 드럼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그는 화순에서만 음악을 배웠다. 흔히 ‘지역에서 음악을 전공한다’는 말에는 결핍의 뉘앙스가 따라붙는다. 입시를 위해서는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통념과, 더 나은 환경이 서울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신 씨의 기억 속 화순은 달랐다. 그는 “화순에서 음악을 배웠다고 해서 아쉬웠던 점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스승과의 만남이 있었다. 지역 음악교육 공간 ‘아트포’를 운영하는 정회수 대표는 취미와 전공을 나누지 않고 처음부터 음악 그 자체를 가르쳤다. 블루스부터 재즈 스탠더드까지 음악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신 씨는 그시절을 떠올리며 “지금 생각해보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셈이라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전공을 결심한 그는 중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호남신학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 연주 활동과 함께 작곡과 편곡으로 영역을 넓혔고, 지역 무대를 중심으로 콩쿠르와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았다. 화순에서 ‘남도 재즈 페스티벌’과 ‘DM 콘서트’를 기획하며 지역에 새로운 음악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고민은 ‘잘 연주하는 것’에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이후 그는 미국 유학을 목표로 삼고 준비에 나섰다. 여러 차례 도전 끝에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 합격 통지를 받았고, 2025년 실제로 입학해 한 학기를 수료했다.
“화순에서 나고 자라 처음으로 생활한 대도시가 보스턴이었어요. 해가 지면 고요해지는 화순과 달리 보스턴은 밤이 될수록 오히려 화려한 불빛으로 물드는 도시였죠.”
물론 유학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9·2020학년도 오디션에서 영어 교육 과정(MEIP) 이수 조건부 합격을 받았지만, 당시 미성년자였던 그는 보호자 동반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시 도전해 2024·2025학기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가정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고, 그 과정에서 부모 중 한 분을 떠나보내는 아픔까지 겹쳤다.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삶은 그에게 다른 시련을 내밀고 있었다.
“음악을 아예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제가 음악을 선택한 탓에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럼에도 주변의 응원이 그를 붙잡았다. 이미 미국에서 공부 중이던 화순 출신 동료들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며 마음을 다잡게 했다. 그는 ‘우선 한 학기만이라도 가보자’는 생각으로 보스턴행을 택했다.
힘겨운 여건 속에서도 미국에서 보낸 한 학기는 그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연주자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음악적 위치와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고, 레이팅 오디션에서는 상위 등급을 받았다. 소수만 선발되는 다이아몬드 컷 빅밴드의 드러머로 합류한 것도 그 성과 중 하나다.
“빅밴드 앞에서 드럼 솔로를 해야 했던 날은 2~3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연습했어요. 리허설을 마친 뒤 지도교수가 ‘정말 잘했다’고 말해준 순간의 짜릿한 감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현재 그는 버클리 음대의 1년 과정 대학원 프로그램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소규모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를 대상으로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과정이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경험과 실력을 쌓은 뒤, 궁극적으로 화순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다. 지금 버클리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친구에게 “화순으로 올래?”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기반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음악하는 친구들과 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화순에서 배워 세계로 나아간 뒤 다시 화순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죠. 지금은 재즈를 하기에 ‘볼모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곳이 재즈는 물론 다양한 음악이 자연스럽게 숨 쉬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변화의 출발점에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끝>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수도권으로 이동하지 않고 화순에서만 드럼을 배워,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에 합격한 이력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자는 최근 버클리 음대를 잠시 휴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신 씨를 만나 지역에서 음악을 이어가는 선택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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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출신 드러머 신원주 씨는 “화순만의 재즈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닦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씨가 직접 기획에 참여하고 무대에 오른 ‘남도 재즈 페스티벌 in 화순’ 공연 장면. <두루아트 제공> |
그는 화순에서만 음악을 배웠다. 흔히 ‘지역에서 음악을 전공한다’는 말에는 결핍의 뉘앙스가 따라붙는다. 입시를 위해서는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통념과, 더 나은 환경이 서울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신 씨의 기억 속 화순은 달랐다. 그는 “화순에서 음악을 배웠다고 해서 아쉬웠던 점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스승과의 만남이 있었다. 지역 음악교육 공간 ‘아트포’를 운영하는 정회수 대표는 취미와 전공을 나누지 않고 처음부터 음악 그 자체를 가르쳤다. 블루스부터 재즈 스탠더드까지 음악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신 씨는 그시절을 떠올리며 “지금 생각해보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셈이라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전공을 결심한 그는 중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호남신학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 연주 활동과 함께 작곡과 편곡으로 영역을 넓혔고, 지역 무대를 중심으로 콩쿠르와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았다. 화순에서 ‘남도 재즈 페스티벌’과 ‘DM 콘서트’를 기획하며 지역에 새로운 음악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고민은 ‘잘 연주하는 것’에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이후 그는 미국 유학을 목표로 삼고 준비에 나섰다. 여러 차례 도전 끝에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 합격 통지를 받았고, 2025년 실제로 입학해 한 학기를 수료했다.
“화순에서 나고 자라 처음으로 생활한 대도시가 보스턴이었어요. 해가 지면 고요해지는 화순과 달리 보스턴은 밤이 될수록 오히려 화려한 불빛으로 물드는 도시였죠.”
물론 유학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9·2020학년도 오디션에서 영어 교육 과정(MEIP) 이수 조건부 합격을 받았지만, 당시 미성년자였던 그는 보호자 동반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시 도전해 2024·2025학기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가정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고, 그 과정에서 부모 중 한 분을 떠나보내는 아픔까지 겹쳤다.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삶은 그에게 다른 시련을 내밀고 있었다.
“음악을 아예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제가 음악을 선택한 탓에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럼에도 주변의 응원이 그를 붙잡았다. 이미 미국에서 공부 중이던 화순 출신 동료들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며 마음을 다잡게 했다. 그는 ‘우선 한 학기만이라도 가보자’는 생각으로 보스턴행을 택했다.
힘겨운 여건 속에서도 미국에서 보낸 한 학기는 그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연주자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음악적 위치와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고, 레이팅 오디션에서는 상위 등급을 받았다. 소수만 선발되는 다이아몬드 컷 빅밴드의 드러머로 합류한 것도 그 성과 중 하나다.
“빅밴드 앞에서 드럼 솔로를 해야 했던 날은 2~3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연습했어요. 리허설을 마친 뒤 지도교수가 ‘정말 잘했다’고 말해준 순간의 짜릿한 감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현재 그는 버클리 음대의 1년 과정 대학원 프로그램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소규모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를 대상으로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과정이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경험과 실력을 쌓은 뒤, 궁극적으로 화순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다. 지금 버클리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친구에게 “화순으로 올래?”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기반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음악하는 친구들과 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화순에서 배워 세계로 나아간 뒤 다시 화순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죠. 지금은 재즈를 하기에 ‘볼모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곳이 재즈는 물론 다양한 음악이 자연스럽게 숨 쉬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변화의 출발점에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끝>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