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랑이었고,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2026년 01월 22일(목) 19:05
[ 영화 리뷰 ] 만약에 우리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구교환·문가영 주연 멜로 로맨스
11일째 박스오피스 1위…누적 170만

영화 ‘만약에 우리’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헤어진 연인 은호와 정원이 현재 시점에서 재회한 장면.

“만약 우리가 이사하지 않았다면, 만약 네가 나를 조금만 더 기다려줬다면,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우리가 결혼을 선택했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계속 함께할 수 있었을까?”

삶에는 한 번 놓치면 다시는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무 의심 없이 미래를 믿을 수 있던 젊음의 시간, 초라하고 비루한 날들 속에서도 소소한 기쁨을 건져 올리던 청춘의 감각, 그리고 그 곁에서 내 하루의 색을 가장 선명하게 물들여주던 첫사랑.

김도영 감독의 ‘만약에 우리’는 한때 사랑이었고,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을 되짚는 영화다.

22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만약에 우리’는 11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누적 관객 170만 명을 넘어섰다. 뚜렷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도 한 요인이었지만 최근 드문 한국 로맨스 영화의 흥행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극장가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관객을 다시 불러들이는 해법은 ‘F1 더 무비’와 같은 대형 블록버스터나 ‘아바타’, ‘주토피아2’, ‘귀멸의 칼날’처럼 N차 관람층을 확보한 작품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 왔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의 흥행은 이 공식이 유일한 답은 아님을 보여준다. 화려한 스케일이 없어도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갖춰진 작품이라면 관객은 여전히 극장을 찾는다.

영화는 과거의 사랑을 마음속에 묻고 살아가던 은호(구교환 분)와 정원(문가영 분)이 우연한 재회로 잊고 있던 시간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대만 류뤄잉 감독의 영화 ‘먼 훗날 우리’(2018)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류 감독이 쓴 단편소설 ‘춘절, 귀가’를 원작으로 삼았다.

시작은 2024년 여름, 호치민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태풍으로 발이 묶인 은호와 정원은 호텔로 향하고,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객실에서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뜻밖의 하룻밤은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들을 차례로 불러낸다.

16년 전 대학생 시절 고속버스 안에서의 만남으로 인연을 시작한 두 사람은 서울에서 각자의 꿈을 키워간다.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은호와 건축가를 꿈꾸는 정원은 서로를 의지하며 연인이 된다. 함께 웃고 다투고 화해하며 사랑을 키워가지만, 현실 앞에서 선택은 점점 엇갈리고 결국 이별을 맞는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더 이상 초라하고 불안한 청춘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각자의 이름이 적힌 명함을 가진 번듯한 어른이 됐다. 그러나 우연한 재회는 이들을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되돌려놓는다. “만약 우리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다른 모습이었을까.”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는 연출 방식이다. 흔히 회상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하는 관습과 달리 ‘만약에 우리’는 함께였던 시간은 따뜻한 색채로, 이별 이후의 현재는 무채색 화면으로 배치한다. 원작 ‘먼 훗날 우리’가 사용한 시각적 설정을 이어받은 것이다.

여기에 김도영 감독이 ‘82년생 김지영’ 등 전작에서 보여준 스타일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사랑이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이별을 경험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장면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열렬히 사랑하던 때 은호는 정원에게 소박하지만 분명하게 마음을 표현한다. 반지하 방에 살던 정원을 위해 커튼을 열어 햇살을 선물하고, 선풍기는 늘 정원 쪽으로 돌려뒀다. 높은 언덕 위까지 빨간 소파를 옮겨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이들의 눈빛은 서서히 빛을 잃는다. 은호는 꿈과 다른 직장에 몸을 담고, 정원은 학업을 미룬 채 아르바이트를 한다. 햇살을 들이던 커튼은 닫히고, 선풍기의 방향은 바뀌며, 빨간 소파는 버려진다. 생활의 변화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감정일지 모른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되묻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하지 못했던 말을 모두 털어놓은 후 이별을 받아들이며 막을 내린다. 재회를 바랐던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흑백의 시간 속에 머물던 두 사람의 마지막이 다시 색을 되찾는 것을 보면 이 결말은 비극이 아닌 또 하나의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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