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1년] 사조위, 원인조사 결과 못 내고 경찰은 1년 다 돼 압수수색
2025년 12월 25일(목) 20:05
진상규명 제자리
독립성 논란에 사조위 활동 중단…경찰, 전문지식 없어 감정 못해
공항서 버텨온 유가족 “수사 의지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어” 분통

25일 오후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파손된 둔덕 등의 시설물 잔해들이 사고 당시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1년이 되도록 공항 대합실에서 버텨온 유가족들은 여전히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왜 돌아오지 못한 건지,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그렇게 묻고 또 물었는데 답을 듣지 못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처벌받지 않았고 원인 규명조차 이뤄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1년 다 되도록 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다가 ‘독립성 논란’으로 사실상 일시중지된 상태고, 경찰도 관계자 44명을 입건했을 뿐 1명도 검찰에 송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풀지 못한 숙제들=25일 현재까지 제주항공 사고와 관련해 남아 있는 의혹은 크게 3가지로 좁혀진다.

우선 ‘조류충돌’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 됐는가 여부다. 사조위는 지난 1월 7일 사고기 엔진에서 ‘가창오리’의 깃털과 혈흔을 확인해 조류 충돌이 있었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또 사고 직전 기장이 조난 신호를 보내면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를 언급한 점, 1차 착륙 시도 실패 뒤 복행 중 조류와 접촉하는 장면이 공항 CCTV영상으로 남은 점 등도 조류 충돌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공항 측에서 조류충돌 방지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관제가 적정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엔진 등 기체에 결함이 있었는지, 조종사 과실이 있는지 여부도 논쟁거리다.

사조위는 지난 7월 엔진 제조사 측 분석 결과를 들어 “결함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놨다. 조종사가 조류충돌로 심각하게 훼손된 오른쪽 엔진이 아니라 왼쪽 엔진을 껐다는 분석도 내놨다. 다만 사조위는 이 같은 엔진 조사 결과를 발표하려다 유가족 반발로 무산됐다.

참사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목된 활주로 끝단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둔덕과 관련해 설계와 시공, 관리 과정에서 부실이 있었는지 여부도 가려내야 할 과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3일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에 대해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설치돼야 함에도 콘크리트 둔덕으로 조성돼 항공 안전기준을 위반했다고 국토부에 시정 권고하기도 했다.

◇진상 조사는 하세월=사조위를 통한 원인규명 진상조사는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다.

사조위는 지난 1년 동안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이다 제대로 된 조사 결과를 내놓지도 못하고 새로 구성해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사조위를 국토부로부터 독립된 조사기구로 전환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법 개정안’이 의결되면서다.

사조위는 출범 초기부터 유가족들의 반발을 샀다. 무안공항 건설·관리 책임자인 국토부의 산하 기관으로 꾸리는 바람에 ‘셀프 조사’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당장 독립성 논란은 해소되겠으나, 새 조직을 꾸리는 절차 때문에 진상 규명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사조위는 지난 4~5일에도 공청회 형식으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려 했다가 유가족 반대로 무산됐다. 유가족들은 공청회 개최 사실을 불과 3~4일 전에 통보받았으며, 현장에서는 유가족들의 질문을 아예 받지 않을 예정이었다며 불합리한 공청회라고 반발했다.

◇경찰 수사는 무능=경찰은 지금까지 참사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관계자 44명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유가족이 고소한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와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 전·현직 국토부 공무원, 한국공항공사 관계자 등 22명에 이어 경찰이 자체 인지해 입건한 28명 등이다. 이 중 중복된 인원은 6명이다.

구체적으로는 관제사 2명, 조류충돌 방지 업무 관계자 3명, 2007년 공항 개항 당시 공사 및 허가 관계자 8명, 2023년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개량 공사 및 허가 관련 15명 등이다.

관련자 70여명을 상대로 107회 조사를 벌였으며, 무안공항, 제주항공, 국토부 등 4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사고 당일 CCTV부터 공사 관련 서류, 관련 전자파일 등 압수물품은 총 3084점이며 1만 5000여쪽의 수사기록이 만들어졌다.

다만 경찰의 수사 능력에 대한 의문도 지속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까지도 참사 책임자에 대한 수사 대상자 범위를 정하지 못하고 추가 입건을 반복하더니, 지난 16일에는 뒤늦게 세종시, 김포시에 있는 사조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압수수색을 일찍 진행해 현물을 확보하더라도, 경찰에 항공기 관련 전문 지식이 없어 자체 감정을 하기 어려우니 사조위가 어느 정도 조사가 진행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성과를 압수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에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참사 1년이 다되도록 사건에 대한 전문적 해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경찰이 자인한 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관련자들의 책임 경중·처벌 수위, 혐의 적용 여부조차 구체화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고재승 12·29제주항공여객기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사는 “정부는 1년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었고, 경찰은 사조위 조사 결과만 기다리며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1년이 지났어도 아직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한탄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