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넘어 대안공간으로…공간의 정체성을 완성하다
2025년 11월 19일(수) 19:20
(11) 슈투트가르트 씨어터하우스
1984년 TV작가 베네 슈레츠마이어와 아내 공동 설립
1985년 젊은 예술가·자원봉사자들 개막 갈라쇼
1990년 대 후반 관객들 늘어 공간 확충 필요성 대두
2000년 포이어바흐공단 철강공장 이전 ‘제2의 시대’
1984년 폐 유리공장을 문화공장으로 리모델링
음악·연극·춤·코미디·문학·강연 등 모든 장르 소통

지난 1984년 현대공연예술의 대안공간으로 문을 연 슈투트가르트 씨어터하우스는 음악, 연극, 춤, 코미디, 포럼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유럽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이다. <사진=슈투트가르트 씨어터하우스 제공>

40여 년 전만 해도 인구 65만 명의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삭막한 공업도시였다. 글로벌 기업인 메르세데스 벤츠와 포르쉐의 본사가 자리해 자동차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애호가들에게 슈투트가르트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세계적인 발레단인 슈투트가르트단을 비롯해 고전음악부터 뮤지컬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슈투트가르트 주립극장, 1만5000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슈투트가르트 예술박물관(Kunstmuseum Stuttgart) 등을 품고 있어서다.

2층 건물인 씨어터하우스에는 1000석 내외의 공연장과 소극장, 리허설룸, 다목적실, 레스토랑,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슈투트가르트 씨어터하우스(Theaterhaus Stuttgart, 이하 씨어터하우스)는 음악, 연극, 춤, 코미디, 문학, 강연 등 모든 장르가 소통하는 예술공간이다. 특정 장르만의 무대가 아닌 실험적인 콘셉트로 슈튜트가르트의 문화씬(scene)에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불어 넣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의 지멘스 스트라세에 자리한 씨어터하우스는 건물에서 공간의 정체성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클래식한 공연장에서는 보기 힘든 ‘날 것’ 그대로의 철제 구조물은 문화예술을 넘어 이민, 노동, 지역개발 등 도시 문제 등을 아우르는 대안공간으로서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씨어터하우스는 1984년 TV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베네 슈레츠마이어(Werner Schretzmeier)와 그의 아내인 안무가 구드런(Gudrun)이 공동으로 설립한 대안공간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부부는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소를 모색한 끝에 방겐(Wangen)지역의 폐 유리공장을 발견했다. 다른 극장에서 보기 힘든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무대는 개관과 동시에 독일 전역의 공연애호가들을 불러 들이는 ‘힙한’ 공간으로 부상했다.

씨어터하우스의 메인홀에서는 연중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특히 1985년 젊은 예술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열정으로 막을 올린 개막 갈라쇼는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슈투트가르트는 오페라, 발레, 연극이 주로 국공립기관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트렌디한 공연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선보일 기회를 찾지 못했다. 장르를 넘나 드는 협업을 선보이는 대안그룹에게 씨어터하우스는 구원투수 같은 존재였다. 발레와 오페라에 익숙한 시민들에게도 씨어터하우스의 콘텐츠들은 단조로운 일상에 신선함을 불어 넣은 청량제였다.

지난 1990년 대 후반,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씨어터하우스는 공간 확충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개관 초기 베네 슈레츠마이어 부부를 중심으로 몇몇 예술가들이 주축이 돼 꾸려왔지만 전시, 공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기에는 기존의 시설과 장비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2000년 씨어터하우스는 슈투트가르트 북부의 포이어바흐(Feuerbach)공단에 위치한 철강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제2의 시대를 열었다. 옛 엔지니어링과 기계공장 등이 남아있는 거대한 산업단지는 높은 층고와 탁 트인 아트리움, 가변형 구조의 건물들이 많아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불꺼진 폐공장을 ‘살아 있는’ 문화공장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은 지난했다. 192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시기까지 철강공장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보니 복합문화시설로 되살리기 위해선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물 천장과 외벽 등은 국가보호시설로 지정돼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개조해야 했다.

씨어터하우스가 새 공장을 짓지 않고 문닫은 공장들을 선택한 데에는 독일 정부의 문화재 보호 정책도 한몫했다. 물론 재정상황이 여의치 않은 대안공간으로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화려한 건물을 건립하기란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았다. 당시 독일은 국가적 차원에서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폐공장들을 재생시키는 캠페인을 펼쳤는 데, 이는 씨어터하우스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빈 공장을 손질해 사용하는 게 비용적으로 저렴한 데다 신축 건물에 비해 공사기간이 짧아 공연장을 장시간 닫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 입구의 빨간색의 컨테이너는 1990년대 말 코소보 난민들이 이곳에 거주했던 역사적 상황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했다.
그래서인지 건물 앞에 서면 가장 먼저 강렬한 빨간색의 컨테이너가 눈에 들어온다. 1998년 코소보 전쟁 당시 난민들이 이 곳에 들어와 컨테이너 공간을 마련하고 숙식을 해결한 역사적 상황을 기억하기 위해 씨어터하우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건물 외벽에 설치한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맞은편에 무지개색의 철제계단이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감도는 내부의 벽돌 벽면에는 역대 예술감독의 사진들이 부착된 명예의 전당에서부터 개성넘치는 공연 포스터들이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철제 지붕에 매달린 길다란 조명과 듬성 듬성 놓여 있는 테이블 세트는 근사한 라이브 카페를 연상케 한다. 공장의 구조를 그대로 살린 내부에는 1000석 내외의 메인 공연홀과 소극장, 리허설룸, 스튜디오, 다목적 홀, 레스토랑,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메인 공연홀은 재즈·월드 뮤직 콘서트가 열리며 청소년, 다문화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 매년 1000여 개의 행사가 펼쳐진다.

지난해 개관 40주년을 맞은 씨어터하우스는 도시 전체의 문화적 상상력을 발산시키는 전진기지이자 유럽 현대공연예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상주단체인 세계적인 현대무용단 ‘에릭 가우티어 댄스’(Gauthier Dance)가 참여하는 축제기간에는 티켓 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또한 지난 2023년 ‘드라마발레의 뮤즈’라 불리는 발레리나 출신 안무가 ‘마르시아 하이데’(Marcia Haydee)와 가우티어 댄스와의 콜라보도 국제 무용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무엇보다 씨어터하우스의 강점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총 35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협회가 운영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국공립기관 중심의 독일공연생태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다. 독립예술도 지속가능한 운영이 가능하다는 모델을 제시한 씨어터하우스는 공연예술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슈투트가르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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