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문제 아닌 개인 문제 치부…대학들 갑질 방관
2025년 10월 20일(월) 19:45
‘꼰대들의 대학원’ 노예가 된 학생들 <3> 바뀌지 않는 상아탑 왜
스캔 노예·인분 교수 등 잇단 갑질…사회적 무관심에 법적 보호 미흡
인권센터 운영에도 도움 못 받아…대학측 “모든 대학 다 그래” 변명만

/클립아트코리아

대학원생들의 갑질 피해는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사회적 무관심으로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지난 7월 전남대 대학원생이 갑질 피해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광주·전남뿐 아니라 전국에서 여러 차례 발생한 바 있다.

가장 유사한 사례로 지난 2023년 1월 숭실대 박사연구생 A(24)씨가 갑질 피해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다. A씨는 지도교수로부터 공개적으로 폭언을 듣고, 새벽에도 행정업무를 수행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2017년에는 서울대에서 교수들이 대학원생에게 수만장의 논문과 서적 등 8만 페이지를 스캔하도록 강요했다는 ‘스캔 노예’ 사건이 불거졌다. 또 2015년에는 강남대 교수가 대학원생 제자를 수년간 감금·폭행하고 인분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벌였다는 ‘인분 교수’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사회적 무관심 때문에 현재까지도 대학원생을 위한 법적 보호장치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실정이다.

지도교수 또는 논문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에 대해 맡길 수 있는 업무 범위의 경우, 대학별 학칙 등으로 정해졌을 뿐 법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이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학급 담당 교원의 역할을 규정하는 법령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학원생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포함돼 있지 않아 노동자로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가 지난 2020년 국내 대학 최초로 ‘대학원생, 노동자, 성소수자 등 학내 구성원은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내용을 명시한 ‘인권헌장’을 제정하고자 한 적도 있으나, 교수 평의회 측에서 논의 절차를 밟지 않아 무산됐다.

대학 측의 무관심과 소극적 대응도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대학원생 사망 사고가 난 전남대에서도 최근 대학원생 갑질 피해에 대해 “우리 대학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모든 대학이 다 그렇다”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밝혔다.

대학 측이 피해 구제 창구라고 만든 대학 내 인권센터도 유명무실한 상태다. 학과별 구성원 수가 적어 신고자를 파악하기 쉬운 대학원 특성상 상담을 신청하기도, 피해를 신고하기도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남대는 지난 2016년부터 인권센터를 열고 갑질 피해 신고 창구를 운영 중이지만, 지난 7월 사망한 전남대 대학원생은 센터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갑질 피해 신고 창구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2023년 1건, 2024년 1건, 2025년 0건이었다. 조선대도 인권센터를 운영 중이지만, 지난 2022년부터 올해까지 4년 간 대학원생이 갑질 피해를 신고한 건 1건에 불과하는 등 대학 전반이 비슷한 상황이다.

전남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B씨는 “최근 지도교수로부터 공개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가스라이팅을 당해 논문 심사 받기를 거부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며 “교내 인권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욕설이 들어가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게 아니라 피해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의 현실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부진해 전반적인 갑질 피해 현실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국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학원생 연구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가 마지막이며, 그 외에는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애초 대학원생들의 현실에 대한 사회의 문제 인식 자체가 약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대학원생 관련 사건을 교수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구조적 문제를 떠나 교수 개인과 대학원생 간 문제로 사안을 축소해 보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전국대학원생노조 관계자는 “학생이라는 인식 때문에 대학원생의 노동권이 침해되고, 교수에 종속된 대학원생의 문제, 교수 인성 문제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시급한 지점이다”고 지적했다.

대학원생이 처한 현실을 다룬 책 ‘한국에서 박사하기’ 저자인 이우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는 “2015년 ‘인분 교수’ 사건이 벌어진 이후 대학원생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별로 교원에 대한 징계나 견제 장치가 제각각인 등 구시대적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며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권리 관계를 명확히 반영하고, 대학별로 들쭉날쭉한 인권 보장 제도들을 전국적으로 통합할 단단한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대학원생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며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맞춰 노동조합과 연대조직 등도 잇따라 출범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설립된 데 이어 2019년 ‘대학원생119’, 2020년 연대 조직 ‘연구자의 집’, 지난 8월 ‘연구자공제회’ 등이 출범했다.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한 데 모아줄 수 있는 이들 단체의 목소리에 사회가 귀기울여야 고질적인 갑질 문제를 근절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