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가족 ‘보청견’ 있어 설날 외롭지 않아요”
2025년 01월 24일(금) 12:00
청각장애인 보조견과 설 맞이하는 이지현·전강순씨
벨소리 울리면 휴대전화 물어 전달
자동차 경적 소리 들리면 알려줘
“나의 귀이고 친구이자 가족이죠”
광주·전남엔 2마리 밖에 없어
보청견 잘 몰라 카페 등 출입거부도
많이 알려져 어디든 편히 다녔으면

청각장애인 이지현(왼쪽)씨와 전강순씨가 각각 보청견 여름이와 니키를 안고 웃어 보이고 있다.

“올해 설도 내 귀를 대신해 고생해주는 특별한 가족인 ‘여름’이와 특별한 시간을 보낼 계획입니다.”

광주에 거주하는 청각장애인 이지현(여·33)씨는 민족대명절인 설 연휴 기간 보조견인(보청견) ‘여름’이와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안내견’은 많이 알려졌지만, 보청견은 생소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보청견은 청각장애인을 도울 수 있도록 훈련받은 특수목적견으로 청각장애인에게 생활에 필요한 소리나 정보를 구분해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전국에 40여마리의 보청견이 활동하고 있으며, 광주·전남 지역에는 단 두마리만이 보청견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광주일보 취재진은 최근 광주시 남구 월산동 남구농아인쉼터에서 두 마리 보청견을 모두 만났다. 이지현(여·33)씨의 ‘여름이’와 전강순(여·46)씨의 ‘니키’다.

‘장애인 도우미개’라고 적힌 노란색 조끼를 갖춰입은 보청견 여름이와 니키. ‘따르릉’ 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휴대전화를 물어 주인에게 전달해주고, ‘빵빵’ 경적 소리가 울리면 잠시 멈춰 주인에게 소리가 나는 곳을 고갯짓으로 알려준다.

소통도 수어로 한다. 검지와 중지를 붙여 두 손으로 엑스(X)자를 만들어 보이면 ‘앉아’, 오른손을 펴 손등으로 턱을 두드리면 ‘기다려’라는 의미다.

벌써 7년째 여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씨는 “여름이는 나의 ‘귀’이고 친구이자 가족이다. 함께하면서 외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생활 면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전남 고흥군에서 일자리를 얻어 자취를 시작한 이씨는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배달음식이 도착했다는 초인종을 듣지 못해 한참이 지난 후에야 받아본다든가 진동으로 해둔 알람이나 벨소리를 눈치채지 못해 중요한 일정을 놓치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길을 갈 때 뒤에서 누군가 “조심해”라고 외치는 소리도,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해 사고가 날 뻔하기 일쑤였다. 이때 지인으로부터 보청견을 소개받아 여름이를 만났다.

여름이는 아침 알람이 울리면 휴대전화를 가져와 이씨를 깨우고, 길을 가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안전한 곳으로 길을 피해야 한다’고 눈짓으로 알렸다. 여름이를 만난 이후 회사에 지각을 하거나 약속시간에 늦어본 적이 없다는 이씨는 “여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손발이 척척 맞게 됐다. 마치 여름이와 내가 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4년 전 고향 광주로 돌아와 부모님과 여름이,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씨는 “이제 12살이 된 여름이는 ‘나는 은퇴했다’는 듯 예전처럼 보청견 임무를 거의 하지 않지만, 여름이를 보고 배운 반려견 2마리가 휴대전화를 가져다주고 초인종 소리를 알려주며 보청견 흉내를 낸다”며 웃었다.

남구농아인쉼터에서 이씨와 여름이를 만난 전씨 역시 보청견에 관심을 갖게 됐고, 2살인 니키를 만났다. 어린 니키는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지만,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하고 전씨와 끊임없이 눈을 맞추며 소통한다. 전씨가 우울감을 느낄 때면 옆에 엎드려 함께 슬퍼해주고, 기운 차리고 함께 놀자는 듯 발로 전씨의 손을 끌어당긴다.

전씨는 이날도 턱을 핥아대는 니키를 쓰다듬어주며 “니키 덕분에 매일이 즐겁고 활력이 넘친다”며 “친구이자 가족인 니키 덕분에 이제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여름이와 니키는 각각 믹스견, 푸들로 몸무게가 3~4㎏ 내외의 소형견이다.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게 안내하는 안내견과 달리 소리를 예민하게 포착해 주인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 보청견은 소형견이 대부분이다. 견종도 다양하고, 유기견이 훈련받아 보청견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보청견은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에게는 가족의 의미를 넘어선 신체 일부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안내견 외에 다양한 보조견이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보청견 출입을 금지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다.

전씨는 “안내견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만큼 보청견 등 다양한 종류의 장애인보조견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전문적으로 훈련된 보청견은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의 ‘들을 권리’이기도 하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이번 명절 여름이와 가족과 함께 진도 여행을 할 예정이다. 이씨는 “최대한 ‘보청견’으로서의 여름이와 다양한 곳을 가보려고 노력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여름이를 통해 보청견에 대해 알게되길 바란다”며 “보청견이 잘 알려져서 식당, 카페는 물론 학교와 직장까지 어디든 보청견과 편하게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시각장애인안내견들과 마찬가지로 보청견 역시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따라 주인과 함께 공공장소와 식당, 카페 등 모든 장소에 출입할 권리를 갖는다. 출입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된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