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원점 재논의 제안에도…광주·전남 의료계 ‘냉담’
2025년 01월 13일(월) 19:05
정부 수련 특혜·입영 연기 제시…사직 전공의들 “현장 복귀 없을 것”
발표 내용 신뢰 못하고 비전 제시 없어…레지던트 모집도 난항 예상

13일 광주시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내에서 의료진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입학 정원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고육책을 내놓았지만 광주·전남 전공의들과 의료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사직 전공의들에게 수련특례·입영연기 혜택까지 제시했어도 ‘현장 복귀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0일 교육부·보건복지부 등 사회 분야 부처 업무 보고에서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해 논의해 나간다면 2026년 의대 정원 확대 규모도 제로 베이스(Zero Base·원점 재검토)에서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안 대로라면 5058명이 되는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최 대행은 “대다수 학생이 지난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점, 학교의 교육 여건까지 감안하겠다”면서 “의료에 헌신하기로 한 꿈을 잠시 접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전공의, 교육과 수업 문제로 고민했을 교수님과 의대생 여러분에게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이어 “의료 개혁 추진 과정에서 의견이 다른 분들을 설득하고 협의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며 “의료계도 국민을 위해 필수·지역 의료를 강화하는 의료 개혁 논의와 의료 정상화를 위한 대화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우선 사직 전공의 복귀제한을 풀고 입영을 미뤄주기로 했다.

현행 규정상 전공의가 사직 후 1년 내엔 같은 과·연차로 복귀할 수 없지만, 사직 전공의에 한해 올해 3월 당초 소속 수련 병원으로 복귀하는 전공의에게 특례를 적용해 돌아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또 전공의들이 복귀하면 수련을 마치고 의무장교 등으로 입대하는 입영연기 혜택도 제시했다. 전공의들이 사직할 경우엔 가까운 시일 내 군의관·공보의로 입대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부 전공의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만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하는 입장도 있지만 대다수 지역 전공의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부의 발표 내용을 신뢰할 수 없고 의료계에 대한 비전 제시 없어 단순히 의료현장 복귀를 유도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광주지역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A씨는 “사직의사를 밝힌 전공의 중 입장을 바꿀 이들은 없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사직 전공들 중에는 조기 입대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A씨는 “이미 1년간 정부의 입장이 너무 많이 바뀐 상황에서 말만 앞세우는 정부의 태도에 선뜻 의료 현장으로 복귀를 선택하는 전공의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수련시간을 투자해서 미래에 얻을수 있는게 있어야 수련을 받을텐데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상황에서 기존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의대 교수들도 정부가 한 발 양보하는 모양새지만 전공의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료현장 현실화’에 대한 대책이 빠진 ‘회유책’으로는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윤하 전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계기는 의대정원 문제라고 볼수 있지만, 더 정확히 보면 의료현장의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각각 살길을 찾아 떠난 전공의들이 현장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개선 요구사항은 최소한 필수의료과에 대한 현실적인 수가조정,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 등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사직 전공의도 “특히 필수과 전문의와 일반의의 수입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필수과는 의료사고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면서 “전공의들이 정신없이 수련받으며 살던 때와 달리 사직한 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공의들이 의료현장 복귀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한 레지던트 모집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14일부터 지난해 12월 마감된 레지던트 1년차 추가 모집이 시작되고, 다음달 3일부터 인턴을 모집 하지만 지원자는 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게 지역 의료계의 예상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정부가 수련특례 등을 제시하며 전공의 복귀를 유도했지만, 전공의 모집 대비 지원율은 1.4%(추가 모집 포함 1.6%)에 그쳤다.

의협이 대화에 나선다고 해도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사직 전공의 등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대한의사협회(의협) 신임 집행부가 지금까지 추진된 의료개혁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의협은 14일 김택우 신임 회장 취임식을, 16일에는 기자간담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정부 유화책에 대한 입장 등 향후 대응 방향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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