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무기수 김신혜 25년만에 무죄
2025년 01월 06일(월) 20:00
2000년 친부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 복역…재심 청구 10년 만에 선고
법원 “수집 증거 위법…혈중알코올 0.3% 사망 가능성도”…김씨 출소

친부살해 혐의로 무기수로 복역중이던 김신혜씨가 6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해 소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여·46)씨가 사건 발생 25년만에 재심(再審)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 사건은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이 내려진 사례다. 25년째 복역하던 김씨는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지원장 박현수)는 6일 존속살해 등 혐의로 복역 중인 김씨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청구 만 10년만에 나온 판결이다.

김씨는 2000년 3월 7일 완도에서 아버지에게 수면유도제(30알)가 든 양주(2잔)를 마시게 해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2001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는 “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 말에 대신 감옥에 가기 위해 허위 자백을 했다며 2015년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경찰이 압수·수색영장 없이 증거를 수집한 점 등을 근거로 재심을 결정했지만, 검찰이 불복해 재심개시 여부가 대법원까지 가게돼 2019년 3월 재심재판이 개시됐다.

재판부는 경찰이 제시한 증거를 모두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경찰은 완도에 살고 있던 김씨의 동생을 데리고 가 서울 김씨의 주거지에서 노트 등을 압수해 증거로 제출했다.

노트에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김씨의 습작과 메모, 낙서 등이 담겼다. 경찰은 노트에 ‘아버지 살해 계획’이 있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노트 일부를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임의제출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압수물품이 동생 소유가 아니라는 점 등을 보면 임의제출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씨와 지인들의 진술도 모두 배척했다.

김씨가 자백을 뒤집었고 자백을 들었다는 지인과 경찰관들의 진술도 신빙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위법 수집한 증거를 제외하더라도 김씨의 범행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김씨가 부친에게 수면 유도제를 간영양제로 속여 먹였다고 하지만 막상 부검결과 위장에는 약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숨지기 2시간 전에 수면유도제 30정을 복용했음에도 혈중농도 측정결과 3배가 넘는 13.02㎍/㎎의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사망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303%로 측정된 점으로 미뤄 독립적 사망 원인이 될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김씨 부친이 복용한 수면유도제가 음주와 상호 작용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있다. 아무리 간영양제라고 하지만 30알을 한꺼번에 복용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친의 사망보험금을 노린 범행이었다는 동기도 배척됐다.

재판부는 “보험 설계사 자격이 있는 김씨가 부친 명의로 보험에 가입하면서 부친의 신체장애와 직업 등에 관한 고지의무를 위반해 계약했다”면서 “보험사고가 발생할 경우 고지의무를 지키지 않아 보험금을 지급받기 어려운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또 부친 사망 추정 시간대(새벽 1시 30분 부터 4시 50분)에 김씨의 알리바이가 없지만, 범행 당일 새벽 1시 20분께 친구들에게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는 점을 보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의 행동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이 엇갈리는 것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수시로 번복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허위로 꾸며내다가 다시 수사과정에 맞춰서 진술을 변경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면서 “진술의 일관성이 없는 점 등은 의심스럽긴 하나, 이런 사정만으로는 유죄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날 출소한 김씨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이 수십 년 걸려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생만 하다가 돌아신 아버지를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부끄럽지 않게, 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딸로 살았던 그 세월이 헛되지 않도록 마무리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재심사건을 맡아 무죄를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는 “25년 동안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소회를 밝혔다.

박 변호사는 장기간 복역에 마음이 불안정한 김씨가 반복적으로 선임을 취소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검씨의 변호를 맡아왔다. 박 변호사는 2007년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재심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사건, 완주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사건 등 재심사건을 도맡아 재심전문변호사로 유명하다.

현재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이나 진도 저수지 살인 사건 등의 재심도 맡고 있다.

박 변호사는 “많은 분들이 기대하셨고 응원하셨던 사건의 결과가 너무 늦어진 점에 대해서는 변호인으로서 책임이 적지 않다”면서 “김씨의 출소 이후에는 김씨의 마음과 몸의 상처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고 웃어보였다.

/글·사진=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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