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아버지는 넋을 잃었다
2024년 12월 30일(월) 20:00
아내와 자녀를 한꺼번에 잃고 10년 간 동고동락 친구 떠나 보내기도
“방콕 간다고 들떠 있었는데…가족 보내고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30일 오후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들이 여객기 잔해를 바라보고 있다. /최현배 기자choi@kwangju.co.kr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있다.

임신 3주차 임산부부터 승진을 앞둔 직장인, 친구, 모처럼 여행길에 참변을 당한 일가족 등 희생자들의 사연이 주변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30일 광주일보 취재진이 만난 광주시 남구에 사는 유족 A씨는 “우리 딸 뱃속에 아이가 있었는데”라며 말 끝을 흐렸다.

둘째 임신 3주라는 산부인과 진단에 출산 전 마지막 해외여행을 다녀오겠다던 딸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A씨는 “남은 아이가 6살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모르겠다”며 억울해 했다.

광주시 동구에 사는 조모(32)씨도 하루아침에 고모와 고모부, 사촌동생을 모두 잃었다.

조씨는 사촌동생과 연령대가 비슷해 막역한 사이였다고 회상했다. 고모 역시 평소 사회봉사를 많이 하고 늘 밝고 선하셨던 분이라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조씨는 “고모 회사에서 패키지 여행을 보내준다고 해서 가족여행 차 함께 태국 여행을 간 것”이라며 “사촌동생 SNS에는 가족들과 함께 떠난 방콕 여행의 행복한 순간이 담겨 있어 더욱 믿겨지지 않는다”고 흐느꼈다.

전북 고창에 사는 김모(53)씨도 이번 사고로 10년지기 막역한 의형제를 잃고 무안공항을 찾았다.

김씨는 “친구(희생자)는 금융계에 10년 째 같이 종사하며 동고동락했던 사이”라면서 “사회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동네친구, 형제처럼 지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초·중등생 자녀와 아내, 장모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변을 당했다. 장인 어른은 몸이 아파서 같이 여행 가지 못했다”며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어 텐트에서 실신해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내 친구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내년에 승진을 앞두고 있었어서 더욱 안타깝다”고 고개를 저었다.

광주에서 전날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온 B씨도 사위와 고등학생 손자 둘을 잃고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B씨는 “처음으로 남자들끼리만 떠나는 여행이라며 좋아했었다. 방콕간다며 한껏 들떠있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딸은 여행을 가지 않아 사고를 피했지만 싹싹한 사위, 눈에 담기도 아까운 손자를 한순간에 잃어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B씨는 “추억이 담긴 핸드폰이라도 찾아서 어떤 기억을 안고 돌아왔는지 들여다보고 싶은데 핸드폰 찾는 건 꿈꿀 수도 없는 처지”라고 고개를 떨궜다.

무안공항에서 밤을 꼬박 새운 C씨도 40대 조카와 친동생, 매제를 사고로 떠나 보낸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다.

C씨는 “가족들이 공항에 오지 말라고 극구만류했는데 현장에 와봐야할 것 같아 무거운 마음으로 전날 공항에 왔다”며 “결혼도 안하고 앞날이 창창한 우리 조카 어떡하나, 구호물품은 많지만 밥 먹을 정신이 없다”고 허공만 바라봤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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