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발레의 정수…동화적 판타지와 완벽한 조화
2024년 12월 23일(월) 19:50 가가
광주시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리뷰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 전투·환상적 눈의 나라 겨울 정취 살려
크리스마스 대표작…화려한 미장센·정교한 안무 압권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 전투·환상적 눈의 나라 겨울 정취 살려
크리스마스 대표작…화려한 미장센·정교한 안무 압권
괘종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이루는 각도가 발레리나의 그랑 바뜨망을 닮았다 생각할 즈음, 마법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특수장치를 통해 크리스마스 트리와 선물 상자가 커지자 아이들 눈이 알전구처럼 빛난다.
원작자 E.T.A 호프만의 동화적 상상력이 극에 달한 순간은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의 전투 장면. 관객들은 정중동의 몸짓과 핀포인트 조명이 교차하는 ‘미니멀’한 전장으로 인도받는다.
익살스러운 군무와 겨울날 미장센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를 구현하다니…. ‘호두까기 인형’은 전 세계 각지 발레단에서 매해 상연하는 대표작이지만 광주시립발레단이 펼친 이번 레퍼토리에 어떤 특별함이 있었을까.
광주시립발레단(예술감독 박경숙)이 지난 20~21일 총 3회에 걸쳐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을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선보였다.
21일 오후 3시에 상연된 2회차 공연에는 최근 한국발레협회로부터 신인상을 받은 이상규 발레리노(호두까기 왕자 역), 지난해 같은 상을 받았던 강민지 발레리나(사탕요정)가 출연했다. 과자나라 왕자 역에 박범수, 꿈속의 클라라 역에 강은혜.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에서 마술사 드롯셀마이어는 호두까기 인형을 클라라에게 선물한다. 이후 시계가 자정을 알리자 방 전체가 커지면서 생쥐왕과 병정 인형이 대결하고, 클라라 일행이 눈의 나라와 과자 나라를 여행한다는 내러티브는 익히 알려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품의 짜임새로, ‘클래식’과 ‘동화적 판타지’가 대위적으로 얽혀 있던 점이다.
클라라가 크리스마스 축연에서 병정 인형을 받고 행복해하는 플롯이 주축을 이뤘으나, ‘환상’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전개되는 사탕 요정 서사도 큰 틀을 담당했다.
이 같은 설정은 소녀 클라라가 파드되(결혼이나 파티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의 2인무)를 출 수 없기 때문에 차용된 것이다.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리우스 프피타는 안무 작업 당시 대리자(사탕 요정)를 설정했다. 재안무 버전 중 클라라가 직접 파드되를 추는 경우도 있으나, 이번 공연처럼 구현하는 것이 원형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왕좌에 앉아 있는 호두까기 인형과 클라라를 대신해 사탕요정과 왕자는 고공 안무, 무대를 횡단하는 턴 등 고난도 2인무를 선보였다. 다만 초입 이후에도 클라라·왕자 페어가 ‘관찰자’ 역할을 벗어나 한 번쯤 활약하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이 남았다.
주역들의 오차 없는 안무도 특별함을 더했다. 강민지·박범수 페어는 다양한 기술을 보여주었는데 프리마 돈나의 정교한 스핀과 착지, 손, 발의 아름다운 끝선 처리는 과자 나라 ‘환영식’을 세련되게 묘사했다.
감초 역할인 마더 진저와 어린이 발레단의 존재도 빛을 발했다. 이 여성 배역에 남성 배우(홍민우)를 출연시켜 기존 젠더 롤 구분을 넘어섰다.
드롯셀마이어가 만들어 낸 인형 할리퀸(이용인), 콜롬빈(김민송) 등의 독무도 뇌리에 각인됐다. 이들은 등판에 태엽을 감아둔 것처럼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광주시립발레단이 얼마 전 무대화했던 ‘코펠리아’ 속 자동인형 모습을 겹쳐보게 했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는 기계태엽을 돌리는 듯한 효과음도 들려왔다.
1막 3장을 수놓은 ‘눈의 나라’ 대목에서 펼쳐진 눈의 여왕(임예섭)과 눈 앙상블(노윤정 외 23인)의 군무,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 모형과 마법의 마차는 저마다 이목을 사로잡는 미장센이었다. 이 장면에서 무용수들은 행성이 자전하면서 항성 주위를 공전하듯, 개개인이 스핀하면서 큰 대형을 이루며 빙빙 도는 ‘이중 회전’을 보여줬다. 난이도가 있는 안무였으나 큰 오차 없이 동작을 소화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이 남기는 여흥도 빼놓을 수 없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어우러진 발랄한 1막 서곡과 ‘행진’으로 시작된 발레음악은 2막 ‘눈의 나라’, 러시아 민속무곡 ‘러시아의 춤’ 등으로 이어졌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라비아의 춤’, ‘중국의 춤’, ‘갈잎피리의 춤’도 무대를 수놓았다.
그 중 ‘꽃의 왈츠’는 악기를 쌓아가는 화성과 겹음의 묘가 빛을 발했다. 사탕요정의 시녀들이 일사불란하게 보여준 왈츠는 꽃이 개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날 공연은 클라라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맺었다. 커튼콜과 함께 울려 퍼진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도 송년 분위기와 어울렸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원작자 E.T.A 호프만의 동화적 상상력이 극에 달한 순간은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의 전투 장면. 관객들은 정중동의 몸짓과 핀포인트 조명이 교차하는 ‘미니멀’한 전장으로 인도받는다.
광주시립발레단(예술감독 박경숙)이 지난 20~21일 총 3회에 걸쳐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을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선보였다.
![]() ![]() |
1막 3장 ‘눈의 나라’에서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 인형은 자신을 구해준 클라라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
클라라가 크리스마스 축연에서 병정 인형을 받고 행복해하는 플롯이 주축을 이뤘으나, ‘환상’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전개되는 사탕 요정 서사도 큰 틀을 담당했다.
이 같은 설정은 소녀 클라라가 파드되(결혼이나 파티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의 2인무)를 출 수 없기 때문에 차용된 것이다.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리우스 프피타는 안무 작업 당시 대리자(사탕 요정)를 설정했다. 재안무 버전 중 클라라가 직접 파드되를 추는 경우도 있으나, 이번 공연처럼 구현하는 것이 원형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왕좌에 앉아 있는 호두까기 인형과 클라라를 대신해 사탕요정과 왕자는 고공 안무, 무대를 횡단하는 턴 등 고난도 2인무를 선보였다. 다만 초입 이후에도 클라라·왕자 페어가 ‘관찰자’ 역할을 벗어나 한 번쯤 활약하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이 남았다.
주역들의 오차 없는 안무도 특별함을 더했다. 강민지·박범수 페어는 다양한 기술을 보여주었는데 프리마 돈나의 정교한 스핀과 착지, 손, 발의 아름다운 끝선 처리는 과자 나라 ‘환영식’을 세련되게 묘사했다.
감초 역할인 마더 진저와 어린이 발레단의 존재도 빛을 발했다. 이 여성 배역에 남성 배우(홍민우)를 출연시켜 기존 젠더 롤 구분을 넘어섰다.
드롯셀마이어가 만들어 낸 인형 할리퀸(이용인), 콜롬빈(김민송) 등의 독무도 뇌리에 각인됐다. 이들은 등판에 태엽을 감아둔 것처럼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광주시립발레단이 얼마 전 무대화했던 ‘코펠리아’ 속 자동인형 모습을 겹쳐보게 했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는 기계태엽을 돌리는 듯한 효과음도 들려왔다.
1막 3장을 수놓은 ‘눈의 나라’ 대목에서 펼쳐진 눈의 여왕(임예섭)과 눈 앙상블(노윤정 외 23인)의 군무,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 모형과 마법의 마차는 저마다 이목을 사로잡는 미장센이었다. 이 장면에서 무용수들은 행성이 자전하면서 항성 주위를 공전하듯, 개개인이 스핀하면서 큰 대형을 이루며 빙빙 도는 ‘이중 회전’을 보여줬다. 난이도가 있는 안무였으나 큰 오차 없이 동작을 소화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이 남기는 여흥도 빼놓을 수 없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어우러진 발랄한 1막 서곡과 ‘행진’으로 시작된 발레음악은 2막 ‘눈의 나라’, 러시아 민속무곡 ‘러시아의 춤’ 등으로 이어졌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라비아의 춤’, ‘중국의 춤’, ‘갈잎피리의 춤’도 무대를 수놓았다.
그 중 ‘꽃의 왈츠’는 악기를 쌓아가는 화성과 겹음의 묘가 빛을 발했다. 사탕요정의 시녀들이 일사불란하게 보여준 왈츠는 꽃이 개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날 공연은 클라라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맺었다. 커튼콜과 함께 울려 퍼진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도 송년 분위기와 어울렸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