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주인공 꿈꾸는 신중년] “창공에 두둥실~ 잊고 살던 ‘꿈’ 띄우며 삽니다”
2024년 12월 23일(월) 07:00 가가
<16> 연 공예가 박준기 씨
남 돕는 일 좇아 25년간 소방관 재직
퇴직 3년전부터 ‘좋아하는 일’ 고민
축제 갔다 ‘연’에 반해 기초부터 연마
지금은 각종 축제서 프로급 연 선보여
오전엔 제2 취미인 사진 작가로 활동
“하고 싶은 일 해야 평생 할 수 있어”
남 돕는 일 좇아 25년간 소방관 재직
퇴직 3년전부터 ‘좋아하는 일’ 고민
축제 갔다 ‘연’에 반해 기초부터 연마
지금은 각종 축제서 프로급 연 선보여
오전엔 제2 취미인 사진 작가로 활동
“하고 싶은 일 해야 평생 할 수 있어”
“내가 좋아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며, 은퇴 전 하루라도 건강할 때 2막을 준비하세요.”
불길이 무섭게 타오르는 화재 현장부터, 차가운 바다 속 인명 구조 현장까지. 수십년간 전남 지역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현장을 누볐던 소방관은 하늘로 소원을 날려보내는 연을 만드는 공예가가 됐다.
나주시 대호동에서 누구보다 특별한 인생2막을 살고 있는 박준기(68·사진)씨의 이야기다. 25년간 소방관으로 일했던 박씨는 지난 2017년 나주소방서 소방위(화재조사)로 정년퇴직했다.
신안의 한 섬인 지도(智島) 출신의 박씨는 어릴 적 사이렌을 켜고 바쁘게 화재 현장으로 이동하는 소방차를 보며 동경심을 가졌다. 또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었던 그의 평소 가치관까지 더해져 그는 소방관이 됐다.
그는 이후 나주, 목포, 영광, 영암, 해남 등 전남 곳곳의 소방서에서 일하며 크고 작은 사건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1993년 10월 군산에서 부안 위도로 향하던 서해 훼리호 침몰부터 1994년 4월 나주시 노암면 냉동창고 화재 사고까지 기억에 남는 현장도 많다.
구조 도중 처참한 교통·사망사고 현장을 목격했을 때는 트라우마가 오래 남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살려줘서 고맙다고, 소방관님 덕분에 살았다는 말을 자양분삼아 하루하루 버텨냈다. 그 뿌듯함 덕분에 지금까지 소방관으로서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웃음지었다.
은퇴를 앞둔 그가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조직에 속하지 않는다’였다.
은퇴 후 중소기업 등 취업의 문은 열려있었지만 지금까지 소방관으로서 열심히 살아왔으니,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홀로서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뚜렷한 계획은 없었다. 그러던 중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은퇴를 3년 앞둔 어느 주말, 그는 광주시 남구 칠석동 고싸움놀이 축제 구경을 갔다가 김정옥씨의 연 날리기를 보게됐다. 하늘을 향해 족히 1㎞는 멀리 날아가는 연을 바라보며 연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고, 그 길로 김씨의 작업실인 남구 대촌동 빛고을공예창작촌에 찾아갔다.
그는 김씨에게 대나무를 깎는 방법부터 배웠다. 제대로 깎지 않으면 균형이 맞지 않아 연이 방향을 잡지 못하거나 쉬이 떨어져 버리고 만다. 10년의 시간동안 대나무를 나르고, 깎고, 부러뜨리고, 줄을 끊기를 반복한 그는 오늘에서야 각종 축제에 선보일만한 멋진 연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가을 축제 기간과 연초 해돋이 시즌이 되면 그는 바빠진다고 웃어 보였다.
각종 이벤트 업체에서 축제나 행사를 앞두고 연을 날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플래카드를 달 수 있을만큼의 길이로 제작에 나선다. 코로나19 때는 ‘코로나야 저 높이 물러가라’고 적었고, 올해와 지난해 해돋이 행사 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메시지를 담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아득히 멀리 날아간 연을 바라보면 각종 근심 걱정을 하늘로 날려버린 것 같고, 바라는 바는 하늘에 전달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또다른 인생 2막 직업은 ‘연’ 이외에도 하나 더 있다. 바로 사진작가다. 소방관으로 일할 때부터 사진 찍는 일을 좋아했다는 그는 각종 동호회에 가입해 사진전을 열고, 사진을 판매하기도 한다.
풍경 사진을 좋아해서 특히 봄 가을철 한폭의 산수화같은 운해를 카메라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
새벽 4시께 눈을 뜨면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인근 산을 올라 운해를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됐다. 오전에는 사진을 찍고 오후에는 연을 만들기 위해 공방을 찾는다.
그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인생2막 설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건강할 때 취미를 찾으라”고 강조한다. 취미를 기반으로 인생 2막을 대비하는 직업을 찾는다면 인생 2막은 행복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인생 1막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또 가족들이 있어 책임감에 견뎌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는 70세 이전이라고 생각한다. 70세가 되기 전, 은퇴 후 10년간 정신과 신체가 하루라도 건강할 때 좋아하는 일을 찾아 취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생 2막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평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취미는 생각지도 못하게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은퇴 후 당장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직장 생활을 하며 잊고 살았던, 내가 좋아하는 일을 떠올려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끝>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불길이 무섭게 타오르는 화재 현장부터, 차가운 바다 속 인명 구조 현장까지. 수십년간 전남 지역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현장을 누볐던 소방관은 하늘로 소원을 날려보내는 연을 만드는 공예가가 됐다.
신안의 한 섬인 지도(智島) 출신의 박씨는 어릴 적 사이렌을 켜고 바쁘게 화재 현장으로 이동하는 소방차를 보며 동경심을 가졌다. 또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었던 그의 평소 가치관까지 더해져 그는 소방관이 됐다.
1993년 10월 군산에서 부안 위도로 향하던 서해 훼리호 침몰부터 1994년 4월 나주시 노암면 냉동창고 화재 사고까지 기억에 남는 현장도 많다.
은퇴를 앞둔 그가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조직에 속하지 않는다’였다.
은퇴 후 중소기업 등 취업의 문은 열려있었지만 지금까지 소방관으로서 열심히 살아왔으니,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홀로서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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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기 씨 |
그는 김씨에게 대나무를 깎는 방법부터 배웠다. 제대로 깎지 않으면 균형이 맞지 않아 연이 방향을 잡지 못하거나 쉬이 떨어져 버리고 만다. 10년의 시간동안 대나무를 나르고, 깎고, 부러뜨리고, 줄을 끊기를 반복한 그는 오늘에서야 각종 축제에 선보일만한 멋진 연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가을 축제 기간과 연초 해돋이 시즌이 되면 그는 바빠진다고 웃어 보였다.
각종 이벤트 업체에서 축제나 행사를 앞두고 연을 날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플래카드를 달 수 있을만큼의 길이로 제작에 나선다. 코로나19 때는 ‘코로나야 저 높이 물러가라’고 적었고, 올해와 지난해 해돋이 행사 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메시지를 담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아득히 멀리 날아간 연을 바라보면 각종 근심 걱정을 하늘로 날려버린 것 같고, 바라는 바는 하늘에 전달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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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와 함평을 잇는 박씨나루를 지난 4월 찾은 박씨가 운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
풍경 사진을 좋아해서 특히 봄 가을철 한폭의 산수화같은 운해를 카메라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
새벽 4시께 눈을 뜨면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인근 산을 올라 운해를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됐다. 오전에는 사진을 찍고 오후에는 연을 만들기 위해 공방을 찾는다.
그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인생2막 설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건강할 때 취미를 찾으라”고 강조한다. 취미를 기반으로 인생 2막을 대비하는 직업을 찾는다면 인생 2막은 행복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인생 1막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또 가족들이 있어 책임감에 견뎌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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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장흥군 용산면 소등섬 앞바다에서 박씨가 연을 날리고 있다. |
인생 2막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평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취미는 생각지도 못하게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은퇴 후 당장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직장 생활을 하며 잊고 살았던, 내가 좋아하는 일을 떠올려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끝>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