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건네 준 행복 - 문길섭 시암송국민운동본부 대표
2024년 12월 19일(목) 00:00 가가
2주 전쯤에 한 성직자가 내게 “선생님은 행복하셔요?”라고 물었다. 예기치 않은 질문에 좀 당황스러웠지만 망설임 없이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 “네. 행복합니다!” 대답을 해놓고 이유를 생각해봤다. 절대자와의 신뢰관계, 가족 친지들과의 원만한 관계, 활동에 불편함이 없는 건강,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시를 이웃들과 나누는 일들이 아닐까 싶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암송사랑방이라는 단톡방을 만들어 ‘2년 안에 좋아하는 시 열 편 외우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 온라인 오프라인 합쳐 12월 18일 현재 195명으로 불어났다. 초등학생부터 구순을 앞둔 분까지, 대학총장직무대행도 있고 트럭을 몰고 식자재를 파는 아주머니도 계신다. 여기선 나이 지역 성별, 학력이나 종교의 차이도 없다. 시 안에서 누구나 서로 친구가 된다.
두 달 전부터 이 단톡방에 회원들에게 읽을거리를 드리기 위해 이미 썼던 칼럼을 고쳐가면서 한 주에 세 번 정도 올리는데 몇분이 이 글들에 대한 독후감을 보내 주어 격려가 되기도 한다. 다음은 진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J회원이 보내준 댓글이다.
“어젯밤 늦은 퇴근길에 칼럼과 시 읽고 뭉클하고 따스함이 몽글몽글 마음에 꽃으로 피었습니다. 이렇게 ‘고상하고 아름다운 나라’(펄벅)를 위해 오늘 하루도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고 관장님 덕분에 보람된 하루를 마감하였습니다, 보내주신 칼럼은 하루 중 밤낮 없이 언제나 위로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침 내일 드맹아트홀에서 캠페인 참여 회원들이 암송 축제를 갖는다. 시뿐만 아니라 산문, 경전 암송자도 있어 암송 축제라 명명했다. 내일 발표자 중엔 구약성경 시편 23편을 외울 분도 있고, 피천득의 산문 ‘오월’을 암송할 회원도 있다. 스물여섯 분이 다양한 시를 암송한다. 발표자들과 관람자들은 짧은 시간에 새로운 시를 만날 수 있어 좋다. 새로 만나는 시 중에 이런 시들이 눈에 띈다. ‘송년에 즈음하면’(유안진), ‘너의 이름을 부르면’(신달자), ‘시간에 대한 감사’(정연복), ‘어머니라는 말’(이대흠), ‘차를 마시며’(전원범) 등.
올해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은 가깝게 지낸 한 친지와 소원해진 일이다. 그가 별 거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내 발언을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인 바람에 그 동안 쌓아 올려진 친밀한 관계에 금이 가게 되었다. 이런 예기치 않은 일을 겪으면서 한결같이 같은 얼굴로 나를 대해 주고, 대해 줄 ‘암송 시’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커지게 되었다.
지난 가을 매형의 팔순 기념 여행에서 갖게 된 시에 대한 추억도 특별하다. 팔순 기념식 때 축하시로 택한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암송이 그 자리에 적절하고 의미 있는 시로 평가받기도 했다. 특히 3연의 다음 구절이 우리를 진지한 물음 앞에 서게 했던 것 같다.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몇 년 째 출강하고 있는 교도소 강의 때 있었던 일도 잊히지 않는다. 맨 앞자리에서 진지하게 강의를 경청하던 한 수용자가 강의가 끝나, 나갈 준비를 하던 내게 앉은 자리에서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존함을 알 수 있겠냐고 하면서 볼펜으로 받아 적을 준비까지 했다. 몇 몇 수용자가 웬 일인가 싶어 나가려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난 이름을 물음으로써 내게 호의를 나타내던 수용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신상공개 금지 규정을 생각하고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는 미안함을 드러냈다. 그분은 내 의도를 금방 알아채고 아쉬워하면서도 뜻을 접고 퇴장했다.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또 하나. 강의가 끝나자 한 수용자가 다가오더니 한부씩 나눠 준 강의 자료와 시 선집을 더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자기가 아는 이들에게 주면 무척 좋아할 거라고 하면서. 나는 그분의 관심이 고마워 남은 자료와 시 선집 일고여덟 부를 다 주었다. 그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스친 걸 보고 내 마음에도 행복감이 차올랐다.
새해에도 시는 여전히 내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독자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마침 내일 드맹아트홀에서 캠페인 참여 회원들이 암송 축제를 갖는다. 시뿐만 아니라 산문, 경전 암송자도 있어 암송 축제라 명명했다. 내일 발표자 중엔 구약성경 시편 23편을 외울 분도 있고, 피천득의 산문 ‘오월’을 암송할 회원도 있다. 스물여섯 분이 다양한 시를 암송한다. 발표자들과 관람자들은 짧은 시간에 새로운 시를 만날 수 있어 좋다. 새로 만나는 시 중에 이런 시들이 눈에 띈다. ‘송년에 즈음하면’(유안진), ‘너의 이름을 부르면’(신달자), ‘시간에 대한 감사’(정연복), ‘어머니라는 말’(이대흠), ‘차를 마시며’(전원범) 등.
올해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은 가깝게 지낸 한 친지와 소원해진 일이다. 그가 별 거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내 발언을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인 바람에 그 동안 쌓아 올려진 친밀한 관계에 금이 가게 되었다. 이런 예기치 않은 일을 겪으면서 한결같이 같은 얼굴로 나를 대해 주고, 대해 줄 ‘암송 시’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커지게 되었다.
지난 가을 매형의 팔순 기념 여행에서 갖게 된 시에 대한 추억도 특별하다. 팔순 기념식 때 축하시로 택한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암송이 그 자리에 적절하고 의미 있는 시로 평가받기도 했다. 특히 3연의 다음 구절이 우리를 진지한 물음 앞에 서게 했던 것 같다.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몇 년 째 출강하고 있는 교도소 강의 때 있었던 일도 잊히지 않는다. 맨 앞자리에서 진지하게 강의를 경청하던 한 수용자가 강의가 끝나, 나갈 준비를 하던 내게 앉은 자리에서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존함을 알 수 있겠냐고 하면서 볼펜으로 받아 적을 준비까지 했다. 몇 몇 수용자가 웬 일인가 싶어 나가려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난 이름을 물음으로써 내게 호의를 나타내던 수용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신상공개 금지 규정을 생각하고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는 미안함을 드러냈다. 그분은 내 의도를 금방 알아채고 아쉬워하면서도 뜻을 접고 퇴장했다.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또 하나. 강의가 끝나자 한 수용자가 다가오더니 한부씩 나눠 준 강의 자료와 시 선집을 더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자기가 아는 이들에게 주면 무척 좋아할 거라고 하면서. 나는 그분의 관심이 고마워 남은 자료와 시 선집 일고여덟 부를 다 주었다. 그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스친 걸 보고 내 마음에도 행복감이 차올랐다.
새해에도 시는 여전히 내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독자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