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특별법 개정…“진상 규명 기대” 속 “활동 제약 우려”
2024년 12월 18일(수) 20:15
조사 기간 최대 2년 연장…억울함 풀도록 특별재심 규정도 신설
중앙위 심의·의결 미온적 태도…탄핵정국에 위원 대거 공석 문제
조사 속도 낼 개선 방안 만들고 배·보상 등 총괄할 재단 설립 필요

광양시에 설치된 '여순 10ㆍ19사건' 추모 조형물. <광주일보 자료사진>

여순사건법이 최근 개정되면서 중단될 뻔했던 진상규명 활동을 최장 2년동안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조사의 장애요인이 그대로 남아있는데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조사위원회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에서는 조사기한을 최장 2년(진상조사 기한 1년 연장, 필요할 경우 1년 추가 연장 가능)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법에서 조사 기한을 지난 10월까지로 한정했던 것을 완화한 것이다.

또 기존에는 여순사건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총리가 당연직 위원을 제외한 모든 위원을 선정하도록 했던 것에서 벗어나 위원 15명 중 4명을 국회가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재심 규정도 신설해 여순사건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적법 절차 없이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특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기존 법에서 한계로 지적됐던 사안은 반영되지 않았다.

여순사건위 중앙위원회(중앙위) 차원에서 심의·의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진상규명 속도를 내지 못한 점은 여전한 숙제다.

여순사건위는 먼저 실무위원회에서 사실조사를 거쳐 사건을 중앙위에 전달하면, 중앙위에서 다시 한번 사실조사를 한 뒤 심의·의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중앙위는 지난 2년 동안 회의를 10차례밖에 열지 않았고, 올해는 6월에 한 번, 10월에 한 번 등 총 두 번 연 것이 전부다.

그 탓에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전체 접수 사건 7465건 중 5496건(73.6%)의 사실조사를 완료하고 실무위에서 3984건(53.3%)을 검토 처리 완료했지만, 중앙위는 그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1884건(25.2%)만 최종 결정 처리하는 데 그쳤다.

중앙위의 한 위원은 “조사관이 지금까지 3명밖에 없어 중앙위 조사, 소위원회 결의, 본회의 결의 등 기간이 오래걸렸다”며 “내년에는 조사관을 3명 더 채용해 조사 속도를 높일 방침이다”고 해명했다.

비효율적인 조사·심의 체계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중앙위는 심의·의결 기능만 갖고 있고, 소위원회를 설치한다 해도 안건을 미리 검토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목적만 명시돼 있는데 중앙위가 법의 의도와 달리 ‘이중 조사’를 하고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중앙위 위원 중에 여순사건 전문 연구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던 만큼, 개정안에 따라 국회 추천 위원을 4명 선임할 때는 여순사건 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온 전문가를 다수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중앙위 위원들이 ‘탄핵 정국’으로 대거 공석이 된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중앙위 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와 당연직 위원 이완규 법제처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거나 받을 예정이고, 부위원장 이상민 전 행안부장관과 당연직 위원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박성재 법무부장관 등은 사직했거나 직무정지된 상태다.

더구나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는 인사권이 없어 공석을 채워넣을 권한이 없는 상태로, 탄핵 정국이 길어질수록 위원회 정비도 늦춰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여순사건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재적위원 15명 중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위원의 과반수 찬성하면 의결할 수 있으므로 의결 절차 자체는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순사건 조사 이후 지속적인 연구와 진실 규명, 국가 차원의 추모·위령시설 지원·운용을 위한 준비도 시급하다.

배·보상에 대한 대비 또한 긴급한 문제다. 일정한 배·보상법이 없는 상황에서는 희생자·유족으로 결정되더라도 일일이 국가와 재판을 벌여 배·보상을 요구해야 해 시간과 국가 자원의 낭비가 심각할 전망이다. 더구나 유족 대다수가 고령인 터라 자칫 법정 싸움만 하다 배·보상조차 못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구·추모, 배·보상 등 유족 지원 등을 총괄할 재단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박종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고령인 유족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조사 체계 개선, 시행령 개정 등 조사 속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여순사건의 조사 자체가 다른 사건에 비해 한참 뒤처졌던 만큼, 조사 이후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진실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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