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발레리노 “5·18 그린 작품 각인… 몸의 언어로 광주 아픔 승화”
2024년 12월 10일(화) 21:05
광주시립발레단 소속 ‘한국발레협회 신인상’
한예종 졸업…2019년 입단
‘DIVINE’·‘지젤’ 등 주역 열연
5·18, 자료 찾아가며 공부
발레 매력은 몸의 노력 따른 보상
20~21일 ‘호두까기 인형’ 공연

광주시립발레단 이상규 발레리노가 최근 ‘한국발레협회 신인상’을 수상했다. 오는 20~21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상연하는 ‘호두까기 인형’에서 왕자 역을 맡은 이 씨의 컨셉샷. <이상규 제공>

한국발레협회가 발레계 미래를 열어갈 재목에게 수여하는 ‘한국발레협회 신인상’ 수상자로 최근 광주시립발레단 이상규(31) 발레리노를 선정했다.

지난 9일 밤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여태 무용수로서 노력하며 쉴 틈 없이 도약했던 시간들을 보상받은 기분”이라며 “상을 받기 전까지 실감나지 않았는데 상패를 거머쥐는 순간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다가왔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한 이 발레리노는 2019년 12월 광주시립발레단에 입단, 그동안 ‘DIVINE’이나 ‘지젤’, ‘코펠리아’ 등 굵직한 작품에서 주역을 맡아 왔다. 오는 20~21일에는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호두까기 인형’에 호두까기 왕자 역으로 캐스팅 돼 갈고닦은 기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에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는 작품 ‘DIVINE’이 아직까지 뇌리에 각인돼 있다”고 답했다.

발레 ‘지젤’에서 알브레히트 역을 맡았던 모습.


특히 광주 출신인 박경숙 단장(예술감독)과 주재만 안무가에게 실제 경험을 들으며 이를 연기로 표현했던 과정을 잊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이번 신인상 수상과 함께 광주시립발레단 ‘DIVINE’은 한국발레협회 작품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어 “‘DIVINE’은 대중적으로 익숙한 모던발레라기보다 전위적인 컨템퍼러리 작품에 가까웠기에 움직임 표현이 쉽지 않았다. 한창 연습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온몸에 담이 걸릴 정도였다”고 했다.

대구 출신인 그는 “5·18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광주의 아픔을 육화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2장 ‘기도’에서 영령들의 희생, 고통을 상징하는 초대형 암막을 허리에 두른 채 춤췄던 클라이막스는 관객들을 매료시킨 미장센이었다.

쉽게 토로하기 어려운 발레리노의 고충도 묻자 그는 ‘그랑 파 드 되’(2인무)를 할 때 “발레 특성상 남성 무용수가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발레리나에 포커스가 가야 하기에, 무대에 오르면 늘 침착해야 하는 점이 쉽지 않다”고 했다. 설령 상대 배역이 실수를 해도 중심을 유지해야 극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

그는 ‘DIVINE’ 연습 당시 반라상태로 안무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언급했다. 물론 실제 무대에서는 의식되지 않았으나 리허설은 비교적 밝은 공간에서 진행하기에 “돌이켜보니 삼각팬티만 입고 춤췄던 게 조금은 민망하다”며 웃어 보였다.

발레의 매력으로 꼽은 것은 “몸의 노력에 대해 거짓 없는 보상이 돌아온다”는 점이다. ‘지젤’, ‘코펠리아’ 등에서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던 동작도 선율과 호흡에 익숙해지다 보면 점차 가능해졌다.

“다가오는 ‘호두까기 인형’ 공연은 손끝이나 발끝 등 포인트 묘사와 밝은 분위기를 그리는 데 전념하고 있어요. 클래식 중에서도 고전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에 연기적인 요소보다 전체 뉘앙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에스파다(검)를 든 투우사나 바람둥이, 전사 등 다양한 배역을 오갔지만 무엇보다 왕자 역할을 가장 많이 맡아왔다고 한다.

어떻게 몰입하는지 묻자 “무대에 오르기 전 항상 암시를 한다”며 “상대 배역을 실제로 사랑한다는 ‘자기 최면’을 걸고, 나 자신 또한 실제 왕자라는 생각에 몰두해 페르소나를 발산하려 노력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앞으로 그는 ‘원대한 목표만 집착하기보다 눈앞에 주어진 일상에 충실한 발레리노’가 되고 싶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리허설이 끝나는 오후 4시까지, 불꺼진 연습실에 남아 오늘의 ‘몸 언어’에 집중할 계획이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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