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과 독일에서 한국문학을 알리는 일 - 한미경 독일 하늘퍼블리싱 대표
2024년 12월 10일(화) 00:00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시아인 혐오현상이 대두될 때, 한국에서 온 사람으로 독일에서 사는 것이 고되게 느껴지던 시절, 나는 한국문학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하늘출판사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설립하였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영혼이 조우하고 정신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바로 옆집에 이웃으로 살아도 영원한 이방인이다. 아무리 포용력 넘치는 독일사회라고 해도 피부색과 생김새가 유난히 다르게 생긴 한국인은 더더욱 그러하다.

독일인들이 프랑스인들처럼 자기 문화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독일인만큼 사상의 자유와 다양성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며 타문화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없는 데도, 한국문학이 이들에게 가 닿지 못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열심히 독일어로 번역하고 책으로 출판하지 않는 우리의 게으름 때문일 것이라고 그 당시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부딪치는 한계는 다양했다. 출판관행이나 출판과정에 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바로 문학이란 주제로 넘어가자면 왜 독일은 한국문학의 무덤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다가오는 답이 있었는데, 한강의 노벨상 수상소식은 그래서 더더욱 나에게 깊은 위로를 주었다.

루터의 성경 독일어번역이 세계사에 던진 충격, 때마침 완성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인한 엄청난 전파력, 괴테와 실러가 포문을 연 후 유럽 전체를 풍미하던 독일관념론, 심지어 마르쿠스의 ‘자본론’은 또 얼마나 많은 지성을 사로잡아 근현대사에 영향을 끼쳤는가? 하다 못해 그림형제의 민간설화수집조차도 세계 민속학 태동의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음을 생각해보면 독일인에게 있어 글이란, 문학이란, 책이란 무엇인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독일인에게 있어 글은 일종의 정신적 쿠테타이다. 모든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금기에 저항하는 용기이며, 자유를 향한 외침인데, 동시에 가장 개인적인 실험이다. 독일인이 이것은 문학이라고 정의할 때 가져야 할 가장 근본인 자질은 그러니까 금기를 파괴하는 자유로운 개성의 발현에 있다.

얼마전 찾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강 작가의 독일어판권 독점사인 아우프바우 출판사를 찾아 축사를 건네었다. 출판사 담당자는 표지 디자인은 한강의 시적인 문장을 염두에 두고 진행했다는 것, 채식주의자는 맨부커상 수상작으로 출판직후 바로 독자로부터 관심을 받았지만, 후속 출판 작품 대부분, ‘소년이 온다’도 독자들은 어려워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독자들이 쉽게 선택하지는 않을 책, 한강의 책.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독일의 수 많은 독자들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란 이유로는 읽지 않으리라. 그들만큼 자기 정신의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노벨상의 위력이 설 자리는 별로 없다. 자기 개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진 독일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만큼 개성이 강한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책일 뿐인 것이다. 모든 작가는 자기만의 독자를 찾는 법! 고로 한강은 한강의 독자를 찾을 것이다.

문학사에 남을 위대한 별은 굳이 베스트셀러 작가일 필요가 없다. 아무도 말하지 못한 세계를 용감하게 관조했고, 자신의 피와 살로 모음과 자음을 빚고, 그녀의 영혼 안에서 삭히고 정제해 낸 언어와 문장으로 키워서 우리들에게 현현시켜준 자로서 월계수관을 쓸 자격이 충분한 것이다. 한 인간이 가장 개성적인 고유한 존재로서 존재할 자유를 외칠 때 그 순간 그의 머리카락과 피부색과 눈색깔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인간이란 종으로서 나타나는 신체의 차이는 공통점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하다. 당신이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 ‘나’라는 개인성을 느끼게 해주는 책을 만난다면 당신 개인의 신성함, 특별함, 유일무이함, 가치로움, 있는 그대로 완전함을 느끼게 해주는 글을 읽는다면 그것은 구원일 것이다.

한 개인의 가장 개인적인 삶, 개인성의 핵심은 그의 상처와 무관하지 않아서 고통, 상실, 공포, 소외, 슬픔들은 오히려 한 사람의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융합되어 있으니,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제 본질의 괴물에 먹히기도 하고, 가위눌리기도 한다. 그런데 한강은 그녀의 끈질김으로 이 독소들을 긴 시간을 들여 삭혀낼 줄 알고, 약으로 만들어 낼 줄 아는, 그러니까 인류에게 몇 안되는 (희)귀한 작가인 것이다.

긴 어둠을 기다린 하늘을 붉히는 아침 태양처럼, 공에서 색을 잉태해주는 작가는 그래서 하나의 구원이다. 그 경이로운 자리에 바로 한강이 있다. 그녀는 세계 문학사에서 한 번도 말하지 못한 세계를 외친, 하나의 새로운 태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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