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스쿼트 - 범은경 소아청소년과 의사
2024년 12월 08일(일) 21:30 가가
하체 근력에 관심이 생기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스쿼트. 최근에 만난 운동선생이 내 스쿼트 자세를 보더니 무게중심을 더 앞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스쿼트 자세에서 무릎이 발보다 앞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에 너무 경도된 나머지 무게중심을 지나치게 뒤로 잡았다는 것이다. 사실 스쿼트를 할 때마다 뒤로 넘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다만 익숙해기를 바랐을 뿐 무게중심을 바꿔야 움직임이 좋아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무게중심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모 분유회사 홈페이지에서 아이들의 잠과 관련해 무료 상담을 진행해오고 있었는데 회사가 내년부터는 이 코너 운영을 중단하겠노라고 알려왔다. 아마도 회사경영의 무게중심을 아이들 먹거리 생산에서 성인 건강기능식품 쪽으로 확실하게 옮길 생각인 것 같았고 이런 경영 전략에 따라 분유 마케팅 차원의 양육상담은 그만두는 모양이었다.
무력감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이미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일에서 무게중심을 거두어버렸는데 그들인들 어쩔 것인가.
가장 연약한 것, 가장 아픈 사람에게 무게중심을 두는 사회. 그런 사회가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회이다. 우리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회로부터 자꾸만 멀어져 간다. 다만 아직은 내 주변에는 사회안전고리 주변을 벗어나지 않고 사는 희귀한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제는 ‘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의료분야에도 이런 희귀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위 ‘필수의료’ ‘중증의료’의 길에 삶의 무게중심을 두고 날마다 힘든 스쿼트 자세로 살던 동료들.
그런데 어느 날 정치가,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이들 마음의 중심에 들어있던 코어를 부수어버렸다. 수를 몽땅 늘려놓으면 밀려서 밀려서 갈 수 밖에 없는 낙수과 의사라나. 희귀종 의사들의 무게중심 코어는 오직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뭉개지면 중심축을 잃은 오뚜기 인형처럼 마음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더 이상 스쿼트 자세는 불가능하다.
운동선생은 스쿼트 자세에서 무게중심이 너무 뒤로 가는 것도 불안정하지만 너무 앞으로 보내면 무릎이 망가져서 더는 스쿼트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스쿼트를 배운 것이 언제인데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있나. 다만 정확하게 자세를 잡기에는 나를 흔들어대는 손의 힘이 너무 센걸.
이제는 대다수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겠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급감한 것은 어느 대학병원에서 신생아 여러 명이 사망했던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아기들에게 영양주사를 공급하기 위해 큰 수액병에서 작은 주사기로 분주하는 과정에서 감염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아기들이 사망에 이르렀다며 검찰이 신생아실 담당 교수를 구속기소했다.
사실 이 불행한 사건의 가장 큰 피고는 국가가 되어야 옳다. 주사액을 옮겨 담는 과정은 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나누어 담을 필요가 없는 작은 주사기 영양액이 꼭 필요한데 제약사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이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필수 의약품은 당연히 국가의 지원하에 생산되어야 한다. 자. 구속이 되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항암치료 중에도 일을 놓을 수가 없었던 신생아실 담당 교수인가.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큰 직무유기를 한 국가인가.
며칠 전. 아직도 차마 여린 것들을 향한 마음을 접지 못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료들 단톡방이 또 다시 소란스러웠다. 정부가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에 지불해야 할 돈을 미루겠다는 것. 정부가 돈을 주지 않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필수예방접종을 놓아주는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망하거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백신을 공급하는 공급업체가 망하거나.
오랜 시간 불안해하면서도 무게중심을 뒤로 두고 살았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게중심을 앞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은 뒤늦게야 배웠지만 이제는 모진 바람을 피해 스쿼트를 아예 멈춰야 하는 시간은 아닌지 그것을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의료분야에도 이런 희귀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위 ‘필수의료’ ‘중증의료’의 길에 삶의 무게중심을 두고 날마다 힘든 스쿼트 자세로 살던 동료들.
그런데 어느 날 정치가,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이들 마음의 중심에 들어있던 코어를 부수어버렸다. 수를 몽땅 늘려놓으면 밀려서 밀려서 갈 수 밖에 없는 낙수과 의사라나. 희귀종 의사들의 무게중심 코어는 오직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뭉개지면 중심축을 잃은 오뚜기 인형처럼 마음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더 이상 스쿼트 자세는 불가능하다.
운동선생은 스쿼트 자세에서 무게중심이 너무 뒤로 가는 것도 불안정하지만 너무 앞으로 보내면 무릎이 망가져서 더는 스쿼트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스쿼트를 배운 것이 언제인데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있나. 다만 정확하게 자세를 잡기에는 나를 흔들어대는 손의 힘이 너무 센걸.
이제는 대다수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겠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급감한 것은 어느 대학병원에서 신생아 여러 명이 사망했던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아기들에게 영양주사를 공급하기 위해 큰 수액병에서 작은 주사기로 분주하는 과정에서 감염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아기들이 사망에 이르렀다며 검찰이 신생아실 담당 교수를 구속기소했다.
사실 이 불행한 사건의 가장 큰 피고는 국가가 되어야 옳다. 주사액을 옮겨 담는 과정은 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나누어 담을 필요가 없는 작은 주사기 영양액이 꼭 필요한데 제약사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이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필수 의약품은 당연히 국가의 지원하에 생산되어야 한다. 자. 구속이 되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항암치료 중에도 일을 놓을 수가 없었던 신생아실 담당 교수인가.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큰 직무유기를 한 국가인가.
며칠 전. 아직도 차마 여린 것들을 향한 마음을 접지 못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료들 단톡방이 또 다시 소란스러웠다. 정부가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에 지불해야 할 돈을 미루겠다는 것. 정부가 돈을 주지 않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필수예방접종을 놓아주는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망하거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백신을 공급하는 공급업체가 망하거나.
오랜 시간 불안해하면서도 무게중심을 뒤로 두고 살았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게중심을 앞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은 뒤늦게야 배웠지만 이제는 모진 바람을 피해 스쿼트를 아예 멈춰야 하는 시간은 아닌지 그것을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