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로맨스 - 황옥주 수필가
2024년 11월 27일(수) 00:00 가가
“싹이 났으나 꽃이 피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이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논어 자한 편에 나온다. 글자대로라면 자연현상의 해석일 수도 있고, 한 겹을 뒤집고 보면 사람 사는 세상사의 풀이일 수도 있다. 숨은 뜻은 학문 얘기다. 이루기 어려운 것이 학문이니 순간을 아껴 매진해야 한다는 뜻이란다.
뭐든 간에 처음이 좋다고 반드시 끝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만정도화가 느닷없는 하룻밤 광풍에 떨어질 줄을 누가 예측하랴! 여름날에도 우박이 내린다. 사람의 일도 녹비홍수(綠肥紅瘦)다. 초록시절에 살쪘던 이파리도 붉고 야위면 떨어진다.
조양숙 씨의 논어 해설 속에 ‘말보로(Marlboro)’ 담배 얘기가 있다. 어느 대학, 지금의 MIT공대의 가난한 고학생이 지방 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 여자 집안에선 둘 사이를 반대하며 딸을 멀리 있는 친척 집으로 보내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던 남자는 어렵사리 여자를 찾아내어 두 사람은 집 앞에서 뜨겁게 포옹한다. 얼마동안 시간이 지난 뒤 “나 내일 결혼해”하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하늘이 부셔져 내림을 느낀다. 비통에 빠진 남자, 눈앞이 캄캄하다. 만나서 하고 싶었던 사연 실은 말들이 순간에 증발해버린다.
“내가 담배 한 대 피우는 동안만 내 곁에 있어줄래?” 같이 있을 시간이 끝났음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겨우 꺼낸 말이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당시에는 타들어가는 시간은 길지 않은 궐련의 시절이다. 담배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지고 둘은 너무 값싸게 헤어진다.
그날 이후 남자는 친구와 동업으로 담배를 만든다. 거기다 담배가 타들어가던 순간이 아쉬움을 겪었던지라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을까에 몰두한다. 인내 끝에 세계최초로 필터달린 담배를 만들어 백만장자가 된다.
세월은 누구의 바람 때문에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세와 월이 바뀌는 사이 남편과 사별하고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는 여자의 소식을 우연히 듣는다. 흰 눈이 탐스럽게 내리던 날 남자는 흰색 벤츠를 타고 옛 연인을 찾아간다.
한 여자에게 진실로 정을 주었던 사람,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겠어?”하며 청혼한다. 방해자도 없고 이별의 주원인이었던 돈도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망설이던 여자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답을 미루고 다음날을 약속한다. 들뜬 마음으로 날을 지샌 남자가 다음날 일찍 찾았을 때는 목을 맨 채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인의 주검만 있었다. 녹이지 못해 쌓인 한이 얼만데 가느다란 소망마저 헛꿈으로 사라진다.
찾아본 바 없어 말보로의 처음 이름은 알지 못한다.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는 뜻의 담배는 이별 뒤의 아픔을 참으며 만든 것이다.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가 ‘Marlboro’다. 이 담배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만든 사람의 이름인줄 알았다. 여자의 자살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후회였을까 옛날로 돌아감을 짐이 될 것으로 보았을까? 배신이 자신의 탓만은 아니었을 것, 지난 일은 지난 일, 과거는 과거로 묻어버리면 된다.
충장로 1가 진내과 병원 앞 1미터도 안 된 좁은 골목길은 젊은 남녀 애연가들의 집합소다. 십년 넘게 본 것이지만 그대로 담배꽁초 천지다. 그 속에 말보로 연기도 있을 터이다.
가게에 늘어놓은 담배를 보면서도 생각한다. 피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을…. 여인의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릴 적이면 나의 일도 아닌데 마음이 우울해진다.
“싹이 났으나 꽃이 피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이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공자는 세속사도 다 예측하신 모양이다.
조양숙 씨의 논어 해설 속에 ‘말보로(Marlboro)’ 담배 얘기가 있다. 어느 대학, 지금의 MIT공대의 가난한 고학생이 지방 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 여자 집안에선 둘 사이를 반대하며 딸을 멀리 있는 친척 집으로 보내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던 남자는 어렵사리 여자를 찾아내어 두 사람은 집 앞에서 뜨겁게 포옹한다. 얼마동안 시간이 지난 뒤 “나 내일 결혼해”하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하늘이 부셔져 내림을 느낀다. 비통에 빠진 남자, 눈앞이 캄캄하다. 만나서 하고 싶었던 사연 실은 말들이 순간에 증발해버린다.
세월은 누구의 바람 때문에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세와 월이 바뀌는 사이 남편과 사별하고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는 여자의 소식을 우연히 듣는다. 흰 눈이 탐스럽게 내리던 날 남자는 흰색 벤츠를 타고 옛 연인을 찾아간다.
한 여자에게 진실로 정을 주었던 사람,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겠어?”하며 청혼한다. 방해자도 없고 이별의 주원인이었던 돈도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망설이던 여자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답을 미루고 다음날을 약속한다. 들뜬 마음으로 날을 지샌 남자가 다음날 일찍 찾았을 때는 목을 맨 채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인의 주검만 있었다. 녹이지 못해 쌓인 한이 얼만데 가느다란 소망마저 헛꿈으로 사라진다.
찾아본 바 없어 말보로의 처음 이름은 알지 못한다.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는 뜻의 담배는 이별 뒤의 아픔을 참으며 만든 것이다.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가 ‘Marlboro’다. 이 담배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만든 사람의 이름인줄 알았다. 여자의 자살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후회였을까 옛날로 돌아감을 짐이 될 것으로 보았을까? 배신이 자신의 탓만은 아니었을 것, 지난 일은 지난 일, 과거는 과거로 묻어버리면 된다.
충장로 1가 진내과 병원 앞 1미터도 안 된 좁은 골목길은 젊은 남녀 애연가들의 집합소다. 십년 넘게 본 것이지만 그대로 담배꽁초 천지다. 그 속에 말보로 연기도 있을 터이다.
가게에 늘어놓은 담배를 보면서도 생각한다. 피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을…. 여인의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릴 적이면 나의 일도 아닌데 마음이 우울해진다.
“싹이 났으나 꽃이 피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이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공자는 세속사도 다 예측하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