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섭리 - 이중섭 소설가
2024년 11월 22일(금) 00:00
가끔 세상의 이치는 생소한 방법으로 나에게 경고하곤 한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결국 세상의 이치가 옳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 수업이 끝난 날이었다. 뒤풀이를 마치고 지도 교수와 H 그리고 나만 남았다. 셋은 의기투합해 횟집으로 향했다. 술을 두어 병 마셨다. 나는 지도 교수에게 육체적 노동하며 글을 쓰는 것에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때 H가 세발낙지를 주문해 교수 앞으로 밀었다. 살살 웃으며 맛있으니 많이 드시라고 했다. 장난처럼 보였다. 나는 방금 지도 교수와 글쓰기와 노동에 관해 얘기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뻥이죠, 그걸 믿어요! 어떻게 막일하면서 글을 써요. 자기 외피 치장용으로 하는 말이죠.”

앞에 당사자가 있는데 H가 대놓고 말했다. 듣는 내가 민망했다. 지도 교수는 그냥 허허, 웃고만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막일하며 소설 쓰면 안 되나 싶었다. 몇 차례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나도 일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괜찮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것도 외피용으로 봤겠네?”

H는 나를 무시한 채 지도 교수만 보며 말을 툭, 내뱉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뭐지? 이놈이 뭔가 나한테 맺힌 것이 있구나. 이번에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공법을 썼다.

“전에도 술자리에서 나한테 이런 비슷한 말 했죠? 뒤늦은 나이에 뭐 하러 글을 쓰려하냐고? 오늘 말하는 것 보니 그때 진짜였네?”

횟집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지도 교수는 우리 둘의 대화를 보며 슬그머니 미소만 띠었다. H는 나를 보지도 않은 채 계속 교수만 보았다.

“진심이었죠. 다 아는 사람이 뭐 하러 젊은 사람들 공부하는데 끼어들어요. 귀찮게…….”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한 지 육 개월 정도 되었다. 평소 그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싹싹했다. 교재로 사용하는 소설책도 사서 나눠주곤 했다. 그런데 속은 완전히 달랐다. 나만 녀석과 친하다고 생각했다. 지도 교수는 살짝 웃으며 그 친구와 나를 살폈다.

“그래? 그때 실수한 걸로 생각했는데 진짜였단 말이지?”

그는 나를 보지 않은 채 계속 교수를 보며 이것 드셔보세요, 하며 살살 웃었다.

“말이 많아도 어지간히 많아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이제 관심도 없어.”

그는 대놓고 거침없이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좋아, 교수 앞이 아니었으면 한 볼때기 날리고 싶은데 참는다. 그럼, 오늘로 끝.”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짐을 챙겨 일어났다. 한 번 더 녀석을 째려보았다. 녀석은 지도 교수에게 세발낙지를 드셔보시라고 앞으로 밀었다. 계산대 앞을 지나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이 나이에 젊은 애들과 공부하려다가 이게 뭔 창피냐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다음날, 그 친구한테서 카톡이 왔다. 이전 술자리 끝나고 내게 보냈던 메시지와 똑같았다.

어젯밤 어찌 헤어졌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은데 실수한 것 없었는지요, 술집 계산을 어떻게 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 했다. 문득 그의 글쓰기에 자주 나오는 ‘경계성 알코올 치매’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며칠 동안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나 고심했다. 말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말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말 많다고 나한테 잔소리를 들었던 몇 사람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도 참다 마지못해 한마디씩 하곤 했다. 그 한마디 하는 순간이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였다. 가만 생각하면 그런 한계는 사람마다 달랐다. 말 많다고 느끼는 것도 각자 달랐다. 나는 나 자신이 참을 수 없는 경계에 설 정도면 상대가 말이 많다고 단정을 지었다. 그럴 때마다 상대는 자기는 전혀 말이 많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H와 그날 밤 이후 말 많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화를 냈던 몇 사람도 H처럼 언젠가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섭리가 미리 제삼자를 통해 나에게 경고 메시지를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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