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경의 도수를 올려야겠다 - 양홍 목사·시인
2024년 11월 20일(수) 00:00
악전고투의 젊은 날이 어느덧 다 지나고 산수(傘壽)의 언덕을 넘어선 자신을 발견하고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나의 일임을 깨닫는다. 해마다 생일이 오면 아이들과 친구들의 축복과 축하카드를 받고 그 덕택으로 오늘까지 이른 것이 아닐까?

앞으로 생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지고 초조해지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아무 여유도 없이 쩔쩔매며 살아온 지난날들. 부끄럽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그럴 때 친구들마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한 친구는 내게 좋은 시(詩)를 손수 붓글씨로 써서 보내주었다. 그 시 끝줄에 ‘그대는 나이를 햇수로 세지 말고 친구로 세어라’라고 쓰여 있다. 나는 쓸쓸할 때마다 그 시구를 쳐다보며 읽는다. 살아온 생의 조각보가 내 눈 앞을 지나간다.

아침 산책 운동도 열심히 하여 노후 건강관리를 잘 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소리 높여 노래도 부르자. 쫓아다니며 강의도 듣자. 아직 건강하니 가고 싶은 곳에 가기도 하고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를 젊게 해 준다. 앞으로 남은 나의 날들을 위해 종이 책도 더 읽고 가고 싶은 여행도 더 많이 계획을 세워 보련다. 의무와 책임의 무거운 짐도 이젠 다 벗어버리고 난 지금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기도와 기쁨의 찬양을 마음껏 부르련다.

친구의 편지에 ‘하나님이 건강 주시고, 친구가 있고, 읽어야 할 책이 있는 한 나는 외롭지 않구나’라고 쓰여 있었다. 야! 멋있다. 그렇구 말구.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지! 일 년에 한두 번 서신 왕래가 있을 정도지만 우리는 죽마고우다. 소식이 거의 끊겼다가 한 오년 전 다시 만나 오늘에 이르렀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생선회와 홍어를 좋아해서 어쩌다 명절에 고향에서 만나면 함께 즐기며 밤을 새어가며 이야기하곤 한다. 헤어질 때면 우리 살아있으면 또 만나자 하고 담담히 헤어지곤 했다. 멀리 헤어져 있으나 언제나 마음으로는 가까이 있는 정겨운 친구다.

정년퇴임을 하고 빛고을 광주로 이사와 살면서 시와 수필을 등단하여 대부분을 글 쓰는 문우들과 사귀고 있다. 그분들은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분들이어서 보내준 카톡의 문자는 시요 문학작품이다. 또 읽거나 직접 출간한 종이책들은 서로 오간다. 책을 꾸려 우체국에 부치러 가는 일, 또 다른 책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이 기다림이란 짜릿하고 아름다운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식 그리고 형제들, 친지들. 과연 몇 번이나 더 만나게 될 것인가.

얼마 전 한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여러 가지 축원을 담은 정다운 글. 그 말미에 ‘친구, 건강을 위해 기도 드리겠네’라고 쓰여 있었다. 아름다운 우정에 감사의 행복을 느꼈다. 나 또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친구의 기도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멋있고 복된 네 생의 또 한 해가 되어지이다’하고 머리 숙였다. 나도 더 열심히 친구 친지들을 위해 우정을 다짐하며 축복과 축도를 드리련다.

독서의 계절이 폭염을 밀어내고 드디어 찾아오자마자 광주 출신 한강이 대한민국 첫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학 세계화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전 세계가 한강의 작품집을 구해 읽으려고 앞을 다투고 있단다.

나 또한 멋있고 풍부한 내 삶을 위해 양식이 되는 종이 책을 더 읽으려면 내 안경의 도수를 높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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