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함께…낯선 ‘참여형 리딩극’ 속으로
2024년 11월 03일(일) 19:20 가가
신예 극작가 임수림 기획 ‘대본리딩 덕질쌀롱’ 참여기
영화 ‘완벽한 타인’ 극화 ‘빙의된 사람들’
관객이 공연 현장서 배우로 ‘이색 경험’
매주 수요일 ‘벙커111’등서 공연 이어가
영화 ‘완벽한 타인’ 극화 ‘빙의된 사람들’
관객이 공연 현장서 배우로 ‘이색 경험’
매주 수요일 ‘벙커111’등서 공연 이어가


임수림 신예 극작가가 지난 30일 벙커111 소공연장에서 참여리딩 공연 ‘빙의된 사람들’을 선보였다. 왼쪽부터 임 극작가(예진 역)와 수현 역 허하민, 태수 역 전형진 및 영배 역 권진철.
S#29, 큰 테라스.
한 무리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걸려오는 모든 연락을 공유하는 게임에 심취해 있다. 이재규 감독의 영화 ‘완벽한 타인’ 중 한 대목을 극화한 장면이다.
지난 30일 저녁 광주 동구의 소극장 벙커 111에는 신예 극작가 임수림이 기획한 참여형 리딩극 ‘빙의된 사람들’에 출연하는 고정 배우 및 관객들이 자리했다.
이날 기자에게 주어진 배역은 수의사 세경(김지혜 분)의 전 남자친구 ‘연우’. 즉석에서 세경과 전화하는 모습을 열연해야 했다. 그녀의 남편인 준모(조현근) 앞에서 애견 ‘알버트’의 교배 요령을 묻는 역할이었다.
대본을 받아 보니 ‘강아지를 마사지하는 방법’부터 ‘애견 발기 부전 치료법’, ‘교배 자세’ 등을 묻는 민망한 대사가 실려 있다. 준모에게 오해의 소지를 남기기 충분한 내용은 원작에서도 큰 갈등의 씨앗이 됐다.
연기 경험이 전무함에도 이 까다로운 연기를 끝마칠 수 있던 까닭은, 이날 작품이 참여형 리딩 공연을 표방했기 때문.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은 기대 이상의 감각을 선사했다.
‘리딩 공연’은 수도권 신작 쇼케이스 등에서는 자주 차용하는 방식이지만 그동안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스타배우 최재림, 윤공주, 아이비 등이 출연한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도 이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복잡한 대본 암기, 표정연기 등은 모두 ‘선택사항’. 오직 감정선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리딩 공연만의 장점으로 다가온다.
임 작가는 “그동안 대본을 실감 나게 읽는 것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을 모아 ‘대본리딩 덕질쌀롱’을 진행해왔다”면서 “연극을 좋아하지만 참여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예비 배우’와 함께하고픈 생각에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공연이 시작되자 속초고 동창 석호, 태수, 준모, 영배 네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한다.
관객들에게는 총 11개의 배역이 주어져 이들과 호흡을 맞췄다. 딸 소영을 비롯해 태수 엄마, 경찰관, 페북남, 인공지능 시리 등 크고 작은 역할들은 저마다 극의 흐름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감초 캐릭터다.
테이블 두 개 만이 전부인 단출한 구성이었으나 임 작가는 “리딩 공연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역동적인 장면보다는 대사가 많은 작품, 장면을 텍스트로 선정했다”고 했다.
달빛을 연상시킨 조명, 벨소리 ‘I’ll survive’ 등 음향효과는 모두 일반극과 유사한 구성이었다. 서사를 끌고 가는 핵심은 ‘목소리’였으나 책상을 내려치거나 백스테이지로 퇴장하는 등 비언어적 연기도 곁들여졌다.
흐름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자신의 파트를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참가자들은 작품에 고도로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극이 전하는 메시지도 좋았다. 모든 인간은 ‘사회적 나’, ‘개인적 나’, 그리고 ‘숨겨진 나’로 구분되며 자신의 비밀스런 측면이 꼭 폭로될 필요는 없다는 것.
이번 ‘완벽한 타인’과 같이 ‘비포 선라이즈’, ‘맨 프럼 어스’처럼 대사가 많은 작품은 리딩 공연에서 안정적인 선택지가 될 것 같다. 다만 추후 일반인 배우들의 대본을 늘리거나 조금 더 동적인 텍스트로 확장해가는 모습도 고려해볼 수 있다.
유독 낭창한 목소리로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 일반인 참가자가 눈에 띄었다. 석호(정인호)와 예진(임수림)의 딸 ‘소영’ 역을 연기한 김소연(25·봉선동) 씨다.
김 씨는 “연극·영화 전공자는 아니지만 평소에 연기에 관심이 많아 미리 영화까지 찾아 보고 이번 연극에 참여했다”며 “오늘 만큼은 객석을 벗어나 ‘일일 배우’가 된 것 같아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고 했다.
이어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극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리딩 공연’이 앞으로도 계속됐으면 좋겠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이색적인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리딩쌀롱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마다 소공연장 벙커111 등에서 계속된다. 사전신청을 통해 일일게스트로 참여할 수 있으며, 리딩 작품은 투표를 통해 선정한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한 무리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걸려오는 모든 연락을 공유하는 게임에 심취해 있다. 이재규 감독의 영화 ‘완벽한 타인’ 중 한 대목을 극화한 장면이다.
지난 30일 저녁 광주 동구의 소극장 벙커 111에는 신예 극작가 임수림이 기획한 참여형 리딩극 ‘빙의된 사람들’에 출연하는 고정 배우 및 관객들이 자리했다.
대본을 받아 보니 ‘강아지를 마사지하는 방법’부터 ‘애견 발기 부전 치료법’, ‘교배 자세’ 등을 묻는 민망한 대사가 실려 있다. 준모에게 오해의 소지를 남기기 충분한 내용은 원작에서도 큰 갈등의 씨앗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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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 역을 맡은 김지혜(왼쪽부터), 준모 역 조현근, 석호 역 정인호. |
최근 스타배우 최재림, 윤공주, 아이비 등이 출연한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도 이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복잡한 대본 암기, 표정연기 등은 모두 ‘선택사항’. 오직 감정선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리딩 공연만의 장점으로 다가온다.
임 작가는 “그동안 대본을 실감 나게 읽는 것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을 모아 ‘대본리딩 덕질쌀롱’을 진행해왔다”면서 “연극을 좋아하지만 참여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예비 배우’와 함께하고픈 생각에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공연이 시작되자 속초고 동창 석호, 태수, 준모, 영배 네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한다.
관객들에게는 총 11개의 배역이 주어져 이들과 호흡을 맞췄다. 딸 소영을 비롯해 태수 엄마, 경찰관, 페북남, 인공지능 시리 등 크고 작은 역할들은 저마다 극의 흐름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감초 캐릭터다.
테이블 두 개 만이 전부인 단출한 구성이었으나 임 작가는 “리딩 공연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역동적인 장면보다는 대사가 많은 작품, 장면을 텍스트로 선정했다”고 했다.
달빛을 연상시킨 조명, 벨소리 ‘I’ll survive’ 등 음향효과는 모두 일반극과 유사한 구성이었다. 서사를 끌고 가는 핵심은 ‘목소리’였으나 책상을 내려치거나 백스테이지로 퇴장하는 등 비언어적 연기도 곁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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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공연 관계진 및 행사 참가자들의 모습. |
극이 전하는 메시지도 좋았다. 모든 인간은 ‘사회적 나’, ‘개인적 나’, 그리고 ‘숨겨진 나’로 구분되며 자신의 비밀스런 측면이 꼭 폭로될 필요는 없다는 것.
이번 ‘완벽한 타인’과 같이 ‘비포 선라이즈’, ‘맨 프럼 어스’처럼 대사가 많은 작품은 리딩 공연에서 안정적인 선택지가 될 것 같다. 다만 추후 일반인 배우들의 대본을 늘리거나 조금 더 동적인 텍스트로 확장해가는 모습도 고려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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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석호(정인호)와 예진(임수림)의 딸 소영 역을 연기한 김소연 씨. |
김 씨는 “연극·영화 전공자는 아니지만 평소에 연기에 관심이 많아 미리 영화까지 찾아 보고 이번 연극에 참여했다”며 “오늘 만큼은 객석을 벗어나 ‘일일 배우’가 된 것 같아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고 했다.
이어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극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리딩 공연’이 앞으로도 계속됐으면 좋겠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이색적인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리딩쌀롱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마다 소공연장 벙커111 등에서 계속된다. 사전신청을 통해 일일게스트로 참여할 수 있으며, 리딩 작품은 투표를 통해 선정한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