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삶’의 주인공들, 그래도 희망이 느껴진다
2024년 11월 01일(금) 12:00
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이제 첫 작품집을 낸 작가에게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의 애정과 인정은 큰 힘이 된다. 김지연 작가가 지난 2022년 펴낸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는 그해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2위에 선정됐다. 당시 1위는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지연 작가가 2022년부터 최근까지 쓴 신작 9편을 담은 두 번째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을 펴냈다. 보통 수록작 중 한편을 책 제목으로 삼는 것과 달리 이번 소설집 제목 ‘조금 망한 사랑’은 책에 실린 작품은 아니다. 대신 김 작가를 ‘망한 인생의 천재’라고 칭한 권희철 평론가의 말처럼,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면 ‘망한 삶’이라고 보기 딱 알맞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 세계와 어울리는 제목이다. ‘조금’이라는 단어에서는 작지만, 꼭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느껴지고, 책 속 인물들에게도 그런 기운을 발견하게 된다.

흥미로운 작품은 올해 젊은 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반려빚’이다. 주인공은 “거의 매 순간 돈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정현. 서일과의 긴 연애 끝에 남은 1억 6000만원은 반려동물인 고양이나 개처럼 그의 ‘반려빚’이 됐다. 꿈 속에서 정현은 반려빚과 산책을 한다(물론 목줄을 쥔 쪽은 빚이다). 빚을 다 갚고 난 며칠 후, 거실에서 TV를 보던 반려빚이 짐을 싸 떠나자 정현은 “꿈에서 마냥 홀가분했고 깨어서도 그랬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된다.

사랑의 감정은 묘하다. 몇년 만에 다시 나타난 서일에게 “너 때문에 내 인생은 다 망했어. 나는 이제 사람도 잘 못 믿고 의심부터 해. 뒤통수치고 도망가지 않을까 하고”라며 화를 내지만 또 미련처럼 남아 있는 사랑의 한 조각을 느낀 채 갈팡질팡한다.

최근작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여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한 남편과 헤어지며 양육권을 포기하고 집을 나온 안지에게 남편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0년 만에 걸려온 전화는 남편의 사망과 함께 사망보험금의 수익자가 안지에게 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이의 양육비를 보내달라고 청한다.

제목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경기 지역 밖에서 사망’은 안전관리가 소홀한 일터에서 작업하다 부상을 입고 쉬던 하청업체 현장직 노동자인 상욱이 ‘지방에 사는 청년들의 일과 삶’을 주제로 글을 쓰는 미주에게 동네를 안내하고 인터뷰에 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책에는 그밖에 수능이 끝난 후 삼촌과 함께 유자밭에서 유자를 따고 유자차를 만드는 이야기를 담은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2022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 수상작으로 연애가 끝난 후에도 완전히 정산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포기’ 등의 작품이 실렸다.

<문학동네·1만7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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