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배제… 한국 우생학의 과거·현재·미래
2024년 10월 25일(금) 00:00
우리 안의 우생학-김재형 외 지음
우생(優生)의 사전적 의미는 ‘좋은 유전 형질을 보존하여 자손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19세기 등장한 우생학은 찰스 다윈의 ‘자연도태설’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프랜시스 골턴의 ‘인위 도태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를 비롯한 8명의 전문가들은 신간 ‘우리 안의 우생학’을 통해 과학사와 의학사, 의료사회학, 장애사, 젠더연구 관점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에 도입된 우생학의 역사를 살펴보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우생학적 사고방식의 폐해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현재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와 박지영 인제대 의대 교수는 프롤로그에서 한국 우생학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신간 집필의도를 이렇게 밝힌다.

“…‘우리안의 우생학’은 우생학의 비윤리성을 드러내는 것보다 우생학이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려한다. 우생학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을 부적격자로 구분하는지, 그로 인한 차별을 어떻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보건, 복지, 교육 등 여러 분야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드러냄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차별의 한 양태를 밝히고 문제 삼으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대 인종학적 우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역별·직업별로 조선인 체격측정을 실시했다.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면 부부 5쌍의 유리건판 사진.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적격과 부적격 그 차별과 배제의 역사’라는 부제를 붙인 신간은 크게 ‘민족개조의 염원’과 ‘과학과 국가의 이름으로’, ‘격리되고 배제된 이들’ 등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우생학이 도입되고, 1930년대 조선인 의사 중심의 조선우생협회 주도와 식민당국의 지원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인공수정 기술을 활용한 ‘자발적 비혼모’에 대해서도 살핀다. 2부에서는 해방 이후 우생학이 가족계획사업과 동성동본 불혼(不婚) 제도, 모자(母子)보건법 법제화 등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되는 과정을 다룬다. 3부에서는 한센인과 정신박약·간질환자, 부랑부녀(浮浪婦女) 등 집단수용시설 안팎에서 우생학의 이름으로 분류, 격리, 단종 당했던 어두운 역사를 들춰낸다. 소록도에 수용돼 강제로 정관 절제수술과 낙태수술을 받았던 한센인들은 2011년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소현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연구소 학술연구팀장은 ‘한국 가족계획사업과 장애인 강제불임수술’에서 모자보건법 제9조(강제 불임수술 조항)를 살피며 정부의 장애인 재생산권 침해에 대해 문제제기한다.

“국가 돌봄과 지원이 빈약해 양육 책임을 장애인 가족이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 복지의 어두운 현실도 문제지만,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그로부터 형성된 심성 속에 녹아있는 우생학적 사고의 위험성을 성찰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전히 우생사회’인 한국에서 미래 우생학적 사고는 어떻게 변화할까? 2000년대 들어 ‘초저출산 사회’로 진입되며 세포유전학과 산전(産前) 진단 기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영아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여성의 선택속 우생학의 그림자’에서 ‘초이스 맘’을 통해 인공수정·산전 진단기술 등 미래에 도래할 문제점을 제기한다.

“인간의 출생에 개입할 수 있는 의과학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러한 경계심은 앞으로 더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김재형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근대적 낙관론과 인간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욕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우생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탈우생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함께 모색해나가는 동료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한다.

“탈우생사회로 가는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우생사회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가 왜 우생사회를 살게 되었는지 진단하는 것이다.”

<돌베개·1만9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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