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눈·이성의 눈·깨달음의 눈…인간은 ‘뇌를 넘어서 본다’
2024년 10월 18일(금) 00:00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눈 뇌 문학, 석영중 지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한국 문학에 내리는 ‘축복’이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처음,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처음 노벨문학상에 선정된 한강 작가에게는 큰 영예이지만 한국문학 차원에서도 크나큰 경사였다.

무엇보다 한국문학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한국문학이 변방에서 중심부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K문학의 가능성을 입증한 의미있는 진전이었다. 스웨덴 한림원으로 대변되는 서방세계가 우리 문학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본다는 것,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인간의 눈은 무척이나 신비롭다. 많은 것을 보고 그것을 토대로 사유한다. 인간에게 본다는 행위는 많은 분야가 결부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단순한 자연과학, 신경 과학을 넘어 심미적인 부분인 문학, 미학 등도 결부된다.

본다는 것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빛을 감지해 뇌에 전달하고, 시각 이미지가 형성되는 일련의 과정을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보는 것을 토대로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보기도 한다.

시각과 인지, 예술에 관한 책 ‘눈 뇌 문학’은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든다. 책의 외견도 두꺼운데다 내용도 방대하다. 전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가 쓴 ‘눈 뇌 문학’은 과학과 인문학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깊이와 재미를 선사한다. 저자는 한국 러시아문학회 및 한국 슬라브 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러시아 문학 연구에 매진했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인간은 ‘뇌로 본다’라는 사실을 넘어 ‘뇌를 넘어서 본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너무 작거나 커서 혹은 너무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무수한 도구를 발명했으며 ‘내면의 눈’으로 초월적인 무언가를 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그리스도께서 민중 앞에 나타나심’(1857)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 지성사에 새겨진 시각에 관한 논의를 샅샅이 살핀다. 알려진 고전은 물론 문학사적 중요성은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텍스트까지 꼼꼼히 들여다본다. 성경부터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푸시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디킨스, 제발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텍스트가 다뤄진다.

도스토옙스키는 미술 평론 ‘예술 아카데미 전시회에 부쳐’에서 예술가는 ‘몸의 눈’을 넘어 ‘정신의 눈’ 나아가 ‘영혼의 눈’으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프란체스코회 소속 사제인 로어는 지는 해를 바라보는 눈을 중심으로 인간의 시선을 분류한다. 석양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제1의 눈과 상상, 직관, 이성을 통해 광경을 바라보는 제2의 눈 그리고 근원적인 신비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는 제3의 눈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각각 육신의 눈, 이성의 눈, 참된 깨달음의 눈이다.

눈은 창조하고 감상하는 기관이다. 문학 작품에는 그림을 비롯해 조각, 사진 등 시각 예술 작품을 언급한 내용이 많다. 작품에 관한 언급은 그것이 해설 또는 평론이든 전체 의미와 직결된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에크프라시스’라 일컫는데 이것의 고전적 정의는 ‘시각적 재현에 관한 언어적 재현’이다. 물론 “에크프라시스는 문학 비평 뿐 아니라 미술사와 미학과 문화사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안젤로 몬티첼리 ‘아킬레우스의 방패’(1820년경)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묘사한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가장 오래된 에크프라시스의 사례다.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에서 톨스토이, 고골,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에드거 앨런 포, 토마스 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소설가들이 서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혹은 미학적 입장을 개진하기 위해 에크프라시스를 도입했다”고 언급한다.

특히 마지막 장 ‘신의 눈을 흉내 내는 시선’은 문학 대가들이 상상한 신의 눈에 초점을 맞춘다. ‘악령’과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서는 보편적인 참회와 구원의 눈물, ‘전쟁과 평화’와 ‘이반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응시 등의 형태로 작품에 투영돼 있다.

<열린책들·4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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