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나주배…더 까만 농심
2024년 10월 16일(수) 22:05 가가
나주 금천면 배농사 현장 가보니
장기 폭염에 배 물러지고 썩어
피땀 흘려 지은 농사 다 망쳐
수확량 뚝…매출 80% 하락도
재해보험 적용 안돼 한숨만
기후변화 피해 날로 커지는데
열과 피해 자연재해 인정 시급
장기 폭염에 배 물러지고 썩어
피땀 흘려 지은 농사 다 망쳐
수확량 뚝…매출 80% 하락도
재해보험 적용 안돼 한숨만
기후변화 피해 날로 커지는데
열과 피해 자연재해 인정 시급
“다 물러지고 썩어버렸는데 보상도 못받으니 차라리 열대과일 농사를 지어야 할 판이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추석을 지나서도 이어지는 유례없는 기상이변과 잦은 비 때문에 나주 특산품인 배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본격 수확기를 맞아 나주배 농가들이 배를 감쌌던 종이봉지를 열었더니 배들이 모두 까맣게 타버렸기 때문이다. 긴 폭염으로 열과(裂果)와 일소(日燒)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일소’는 배 껍질이 검게 그을리고 과육이 무르는 현상으로 여름철 기온이 높고 강한 직사광선을 쪼일 때 발생한다. 일소 피해를 입으면 열과로 이어지거나 과실이 썩고 괴사한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지난 16일 찾은 나주시 금천면의 한 배 과수원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일소 피해를 입은 배가 떨어져 썩으면서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과수원 곳곳에는 겉이 까맣게 타거나 물러 벌레 먹은 배가 쌓여 있었다.
7년째 배농사를 짓고 있는 진명호(62)씨는 “평소 수확량의 5분의 1 정도밖에 건지지 못했다. 피땀 흘려 농사지었는데 허탈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진씨는 과수원에 일소 피해가 덮치면서 올해 매출이 700여만원 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평소 매출이 4000여만원인 것에 비해 80%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진씨는 “인건비 등 비용이 2000만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손해만 떠안게 된 셈”이라며 “어이가 없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진씨의 밭 인근에서 배 농사를 짓던 다른 농민은 배농사를 포기하고 과수원을 내놨다. 흑성병과 일소 피해 등으로 배 농사를 아예 망치자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진씨는 “40년 가까이 배 농사를 짓던 할머니가 엉엉 울면서 농사를 포기했다”며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주시는 나주 배농사 재배 면적(1748㏊)의 20~40% 가량이 일소·열과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주배원예농협에 따르면 계약 농가 1272곳 중 1103곳이 일소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했다.
다만 배의 경우 봉지를 씌워 기르기 때문에 일소 피해를 정확히 집계하기 어렵다는 것이 나주시의 입장이다. 특정 구역에서 샘플 과실을 수확해 피해를 집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일소 피해에 농작물재해보험 적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일소는 자연재해로 인정돼 농작물재해보험 적용 대상이지만, 보상을 위해서는 상품성 있는 과실을 골라낸 후 나무에 매달린 열매 중 6%초과 피해 발생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샘플링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져 실제 피해를 인정받고 보상을 받는 농가는 많지 않다는 것이 농민들의 설명이다. 이미 피해가 발생한 과실은 이미 낙과해 썩어가고 있지만 이런 낙과 과실은 피해샘플링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피해를 입어도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주시 노안면에서 20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는 김성보(56)씨는 “올해 수확량이 50%에 그칠 듯한데 재해보험 실사에서는 5% 미만으로 집계됐다”며 “이미 썩어 낙과한 과실은 두고 나무에 달린 과실 중 몇 %가 일소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하는 식이니 현실이 제대로 반영될리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지난 5월부터 나주시 등에 ‘더위가 심상치 않다. 올해 일소 피해 현황을 정확히 집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며 “나주시, 전남도, 정부 모두 손을 놓고 있으니 농민들만 죽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민들은 “이번 대규모 일소 피해가 이상기후로 인한 것임이 명백하지만,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현행 제도가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폭염·폭우 등이 매년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처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열과 피해를 자연재해로 인정해주는 등 재해보험 현실화를 정부에 요구할 방침”이라며 “‘가공용 배 시장격리 지원’ 사업 예산을 증액해 수매가격을 2000원에서 4000원으로 확대하는 등 농가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나주=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추석을 지나서도 이어지는 유례없는 기상이변과 잦은 비 때문에 나주 특산품인 배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지난 16일 찾은 나주시 금천면의 한 배 과수원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일소 피해를 입은 배가 떨어져 썩으면서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과수원 곳곳에는 겉이 까맣게 타거나 물러 벌레 먹은 배가 쌓여 있었다.
진씨의 밭 인근에서 배 농사를 짓던 다른 농민은 배농사를 포기하고 과수원을 내놨다. 흑성병과 일소 피해 등으로 배 농사를 아예 망치자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진씨는 “40년 가까이 배 농사를 짓던 할머니가 엉엉 울면서 농사를 포기했다”며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주시는 나주 배농사 재배 면적(1748㏊)의 20~40% 가량이 일소·열과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주배원예농협에 따르면 계약 농가 1272곳 중 1103곳이 일소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했다.
다만 배의 경우 봉지를 씌워 기르기 때문에 일소 피해를 정확히 집계하기 어렵다는 것이 나주시의 입장이다. 특정 구역에서 샘플 과실을 수확해 피해를 집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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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샘플링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져 실제 피해를 인정받고 보상을 받는 농가는 많지 않다는 것이 농민들의 설명이다. 이미 피해가 발생한 과실은 이미 낙과해 썩어가고 있지만 이런 낙과 과실은 피해샘플링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피해를 입어도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주시 노안면에서 20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는 김성보(56)씨는 “올해 수확량이 50%에 그칠 듯한데 재해보험 실사에서는 5% 미만으로 집계됐다”며 “이미 썩어 낙과한 과실은 두고 나무에 달린 과실 중 몇 %가 일소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하는 식이니 현실이 제대로 반영될리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지난 5월부터 나주시 등에 ‘더위가 심상치 않다. 올해 일소 피해 현황을 정확히 집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며 “나주시, 전남도, 정부 모두 손을 놓고 있으니 농민들만 죽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민들은 “이번 대규모 일소 피해가 이상기후로 인한 것임이 명백하지만,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현행 제도가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폭염·폭우 등이 매년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처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열과 피해를 자연재해로 인정해주는 등 재해보험 현실화를 정부에 요구할 방침”이라며 “‘가공용 배 시장격리 지원’ 사업 예산을 증액해 수매가격을 2000원에서 4000원으로 확대하는 등 농가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나주=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