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현실들- 박안수 남광주농협 사외이사, 경제학박사
2024년 09월 24일(화) 21:30
독일의 안톤 시나크는 우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다. 초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 한 모퉁이에서 오색영롱한 깃털의 작은 새의 사체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추수한 텅 빈 가을 들녘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다.

호남(湖南)이라는 지명은 백제시대 축조된 전북 김제 벽골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졌다. 아마도 그 시절부터 호남은 저수지를 축조할 정도로 벼 재배의 곡창지대였나 보다. 호남지역에서 생산된 양질의 쌀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굶주린 백성의 배를 채우는 그 사명을 충실히 했고 임진왜란 시 7년간의 길고 긴 전쟁에는 군량미로 쓰였다.

하지만 지금 호남의 황금빛 들녘에서 벼 수확을 앞둔 농업인들은 마냥 희망적이지는 않다. 지난해 생산된 쌀값이 계속 하락해 단경기임에도 17만7000원(80㎏)까지 폭락하는 참변이 일어났다. 정치권과 정부의 양곡법 개정이나 쌀값 20만 원 보장제를 기대하는 것은 이제 부질없는 일일 듯싶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54.6㎏를 소비한 반면 수입의존도 높은 육류의 경우 60.6㎏를 소비, 식생활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더욱이 쌀과 함께 우리 농업 양대 산맥인 한우의 경우 2년 6개월 사육 출하시 마리당 143만 원 남짓 적자를 보이고 있는데도 뚜렷한 대책을 찾아보기 힘들어 농업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형국으로 우리 농업인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청년들이 무려 4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결혼을 미루게 되어 0.72명의 낮은 출산율을 기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많은 대기업에서는 신규채용 계획이 없고 더욱이 50대 이상 직장인들은 퇴직을 꺼리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렇다 할 대기업 하나 없는 우리 지역으로서는 역외유출을 더 이상 멈추기 위해 혁신도시 산하 기관 이전과 함께 채용권고 비율을 좀 더 상향시켰으면 좋겠고 전남도에 국립의과대학이 하루 속히 확정되길 기대해 본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는 통일을 위한 남북대화는 굳게 닫혀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 발사와 오물풍선 부양으로 통일을 염원한 국민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아직은 민생과 협치보다는 막말, 탄핵, 특검 등으로 국민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름다운 가을날에 쌀값과 한우 가격 하락, 쉬고 있는 청년, 의료대란, 갈등의 정치가 아닌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현실이 되어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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