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업들 기술혁신과 함께 가는 규모의 성장 필요”
2024년 09월 22일(일) 20:00
광주일보가 만난 경제人 김영집 광주테크노파크 원장
지역산업 육성 핵심 거점 광주TP, 광산업서 AI까지 많은 성과
IT 일자리와 문화 환경만 잘 조성해도 젊은이들 붙잡을 수 있어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까. 단순히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선을 넘어 세계는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각을 읽고, 이를 실현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촉발된 유럽 각국의 경쟁은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그 성과의 비교와 우위의 확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엑스포(Expo, 프랑스어 Exposition Universelle에서 유래), 즉 세계박람회다.

산업혁명이 태동한 영국이 1851년 세계 각국을 초청해 런던대박람회를 열었다. 이것이 최초 엑스포로, 출품 수는 1만3939점, 입장객은 600만명에 달했다. 당시 행사장은 길이 563m, 넓이 138m의 철골 구조물에 수만 장의 유리를 붙인 일명 ‘수정궁’이었다. 공들여 만든 이 건축물에 영국은 그들의 자랑인 증기기관차 엔진을 전시했다. 1853년 뉴욕에서는 엘리베이터,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는 전화기, 1878년 파리에서는 전구와 축음기, 1885년 안트베르펜에서는 자동차, 1958년 브뤼셀 소련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등장했다.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들이 ‘실재’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 박람회에서 자극을 받은 선진국들은 절치부심하고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 다음 박람회에 내놓는 경쟁을 즐겨하며 후진국들과의 격차를 벌여왔다.

우리나라가 세계박람회에 참가한 것은 에펠탑이 첫 선을 보였던 1889년 파리엑스포였다. 1900년 파리엑스포에서는 경복궁 근정전을 모티브로 프랑스인 페레가 설계한 전시관까지 설치해 대한제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세계박람회는 등록박람회와 인정박람회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인정박람회만 두 차례, 1993년 대전엑스포, 2012년 여수엑스포만 치렀다. 부산이 지난 2023년 ‘2030년 등록 박람회’에 도전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렸다. ‘기술 혁신의 장’을 유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단순히 연구만 잘한다고 해서 기술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증하고 적용해 가치가 증명되고, 민간기업이 이를 받아들여 상품으로 만들어 소비가 일어나고 기존 질서에 변화를 줘야 혁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강국을 목표로 삼고 대학, 정부부처 등을 정비한 것이 1960년대 후반이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됐고, 1967년 3월 과학기술처가 발족하는 등 소위 ‘국가 주도형’ 과학기술 시스템을 가동한 것이다.

이 시기 유럽·미국 등 선진국들은 산업 클러스터를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뛰어난 실험 성과와 과학이론도 실제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지 못할 경우 사장되며, 기술이 산업과 연계되어 발전해야 한다는 인식이 그 근간이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산업의 고도화에 나선 것이다. 산업 클러스터들이 세계 곳곳에 자연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영국의 케임브리지 사이언스파크, 프랑스의 소피아앙티폴리스, 일본의 가나가와 사이언스파크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 7월 지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각 지역에서 산업 발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1998년 테크노파크(TechnoPark)가 등장했다. 정부가 설립을 주도하되 지역의 산업, 학계, 연구기관, 지자체 등이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에 맞는 산업발전 전략·정책을 수립하고, 연구개발부터 기업 지원까지 지역 산업 혁신을 주도하는 거점 기관을 설치한 것이다. 1998년 12월 ‘산업기술단지 지원에 관한 특례법’에 근거해 6개 지역에 법인 설립 허가가 났는데, 그 중에 한 곳이 광주·전남 테크노파크(2004년 광주와 전남으로 분리)다.

상대적으로 산업 기반이 취약했던 광주는 테크노파크의 존재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에서 소외되어 기아자동차·삼성가전 광주공장을 주축으로 한 중소하청업체들이 지역 경제를 간신히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래 산업의 발굴이 무엇보다 시급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술의 연구 개발 및 실증, 신기술의 기업 전수 및 기업 지원 등을 진두지휘할 테크노파크가 들어서면서 광주가 광산업 중심도시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이어 차세대 자동차·가전로봇·3D융합·생체의료소재·헬스케어로봇·에너지융합 등 첨단산업들을 시도하고, 인공지능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광주 테크노파크의 움직임은 광주과학기술원(GIST), 한국광기술원 등 연구개발기관, 전남대·조선대 등 지역대학 등의 연구를 촉발하고, 관련 기업의 이전·창업을 촉진해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지역 산업 생태계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지역 간, 지역과 수도권 간 경쟁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놓고 비교우위를 선점해야 하는 지역 기업들에게 든든한 혁신 거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일보는 제10대 김영집 광주테크노파크 원장을 만났다. 그는 대학 운동권 출신으로 제적 이후 10여년 간 노동운동에 투신한 뒤 시민단체에서 일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지방자치운동과 대선캠프 인연으로 20년간은 균형발전, 혁신클러스터, 산업단지 등과 관련한 공적 기관에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2010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에 출마한 적도 있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그가 그리는 광주 산업의 미래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광주테크노파크의 업무를 요약한다면.

▲일반산업단지가 아닌 기술혁신형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만큼 지역 산업과 관련 기업의 기술 혁신, 고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창업 보육 기능부터 기업 성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지원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전국에 17개 광역지자체, 포항·경기 안산 등 19개 테크노파크가 있는데, 광주가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지역 산업 육성에 있어 핵심 거점 기능을 하면서 지자체 산업전략을 기획해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것도 테크노파크가 해야 할 일이다. 광산업에서 인공지능까지 지금까지 성과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의 산업 지형은 여전히 초라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선 수도권과 지역 간 격차가 심하고,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50년 이상 영남 중심으로 산업 기반이 들어섰다. 시작부터가 다르고 정부의 투자 규모 자체가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광주는 1969년 광주 최초로 조성된 공업단지(광천공단) 내 아시아자동차(기아자동차 전신)공장이 들어서고, 1983년 12월 준공된 하남산업단지 내에 1995년 삼성백색가전이 옮겨오면서 산업 지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1년부터 건설부 승인을 받은 첨단과학국가산업단지(이하 첨단산단)는 최근 3단지까지 조성이 끝났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과정을 거쳐 20여년의 시간 동안 첨단산단은 이제 광주 미래산업의 핵심 거점이 되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한국광기술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전자기술연구원 등 20여 개의 R&D 기관이 집적해 있으며, 700개에 이르는 기업들이 모여 있는 혁신 공간이 되었다. 앞으로 3지구의 인공지능집적단지에 세계적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지어졌고, 관련 기관·기업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과거 굴뚝산업에서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미래 첨단 혁신 산업에서는 오히려 강할 것이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봐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며, 광주가 광산업, 인공지능 등을 선택한 것도 굉장히 잘 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광주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조심스럽다. 광주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감히 말한다면 ‘혁신성’이 떨어진다.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민주적 의식은 높아진 반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폐쇄적이고, 쉽게 응하기를 거부한다. 밖으로는 민주적이지만, 안으로는 비민주적 사고를 가지고 있거나 말은 진보적이지만, 실제 행동은 보수적인 경우도 있다. 시민들이 혁신 마인드를 갖도록 지역 리더들이 이끌 필요가 있다. 광주가 혁신의 본거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업가 정신’을 중시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은 변화와 도전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삼성이나 기아차의 하청업체에 머물러 있거나 몇 개 없는 중견기업들 역시 규모의 성장은 하는데 기술 혁신 수준이 낮다. 혁신과 성장이 함께 가는 기업이 필요하다. 최근 광주 테크노파크에 글로벌기업가정신센터 설립했다. 지역대학과 초중고에도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과정 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광주와 기업을 혁신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좋은 직장이 없어 광주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계속 떠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수도권 집중은 이제 어떻게 해서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여러 정부에서 균형발전 시책을 추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권은 계속 더 커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와 문화·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는가. 획기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혁신도시 수준의 청년도시를 몇 개 더 만들어야 한다. IT 일자리와 문화 환경만 조성해도 젊은이들을 붙잡을 수 있다.

-언제쯤 미래 첨단 산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나.

▲이미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광산업 육성을 위해 15년간 1~3단계와 광역선도산업육성에 걸쳐 약 1조 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여기서 만들어진 광통신·광센서 레이저· 광촉매·광융합 기술 등은 자율차·에너지·미래가전·양자통신 등의 산업에 큰 폭발력을 갖고 있다. 다만 광산업과 관련 대기업, 중견기업 등이 이전하거나 성장해 산업을 이끌어야 임팩트가 있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지역 산업 정책은 무엇인가.

▲분산이다. 공공기관만이 아니라 민간기업도 지방으로 이전시켜야 한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구성된 지역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으며, 혁신 기술 역시 만들어내기 어렵다. 산업을 이끌 수 있는 앵커기업이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인센티브, 세제 혜택 등을 줘야 한다. 미국, 중국도 부지 제공이나 파격적인 인센티브, 기업 통제 정책을 사용해 기업들을 이전시킨다. 이렇게 하면 지역균형발전, 지역 역량의 향상과 함께 지역 청년들에게도 좋은 일자리를 줄 수 있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경기도에 집중 조성하는 것은 말이 안 되며, 광주에 AI반도체 단지를 지정해야 된다.

-2년간 상당한 성과를 냈다.

▲일단 여러 가지 광주시와 함께 광주 미래와 관련된 사업들을 기획해 정부부처로부터 지정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미래차 산단 100만평, 광주 자율주행자동자 소부장 특화단지, 광주중소기업위기지원센터 개소 및 중기부 중소기업특별지원지역 지정, 중기부 지역특화프로젝트 레전드 50+에 2개 프로젝트 선정이 대표적이다. RISE(지역혁신중심대학지원체계) 전담기관 지정 및 RISE센터 구축, 11개 산학연협의회 구성 등 전국에 없는 지역산업거버넌스를 만들어냈다. 광주과학기술진흥원과의 기관 통합도 성공적으로 이뤄내 연구 개발과 지역산업의 거점 기관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창업 펀드 4100억원 조성 등 기업 투자를 위한 자금도 착실하게 마련해 올해 내에 5000억 목표를 달성해 낼 것이다. 이와 함께 매달 2차례 정도 기업들을 찾아 지금까지 70개 기업을 현장에 만나 소통하는 것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해 중기부 경영평가, 광주시 경영평가, 중기부 지역특화산업육성평가 등에서 최우수 또는 우수등급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시아의 유사한 기관들의 협의체인 ‘아시아사이언스파크협회’ 회장에 선임되어 광주테크노파크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도 만들었다. 모든 성과에 강기정 광주시장과 조종래 광주·전남중소기업청장께서 큰 힘이 되어 주셨다.

-너무 일 이야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았다.

▲부인할 수 없다. 전남대 81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배자가 돼 제적을 당했고, 잠시 감옥에 갔다 출소한 뒤에는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식품 공장, 자동차 부품 공장 등에 취업했다가 한계를 느끼고 1989년 노동연구소를 열어 측면에서 노동조합을 지원했다. 1995년에 부활한 지방선거에 출마하려고 준비하다가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08일만에 석방되면서 그 기회도 놓쳤다. 이후 시민연대모임, 참여자치 21 등 시민단체에서 일했고, 2000년에 미국 UCLA 객원연구원으로 나가 지방자치 및 NGO 연구 활동을 했다. 한국을 떠난지 7개월만에 귀국해 노무현 대선캠프에서 주저 없이 합류해 선거운동을 했고, 2003년부터 균형발전위원회 창립 멤버로 합류해 공공기관 이전, 지역전략산업, 농어촌신활력사업 등의 정책을 내놨다. 2년9개월만에 혁신클러스터추진단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기업·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지역산업 육성하는 일을 계속 해오다가 광주테크노파크 원장 직전에는 GIST 대외 부총장을 지냈다. 아 그리고 2010년 남구청장, 2016년 남구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에도 나갔으나 실패했다. 운도 없었고 정치인 체질은 아닌가 보다.

-미처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직업을 경험했다. 얻은 것이 있다면.

▲20년간 노동운동과 시민단체, 20년간 공적 업무에 종사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크고 작은 어떤 일이든 하는 일에 주인이 되어라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자세로 작은 일에서부터 항상 모범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큰 일은 성과를 내기도 어렵고, 설사 냈다고 하더라도 모두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

-인적 네트워크가 대단하다고 들었다.

▲거의 매일 저녁약속이 있었는데, 최근 3~4일로 줄였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까 힘들다. 관계의 폭이 넓다 보니 어쩔 수 없는데, 이제 관계를 깊게 하고 성찰을 많이 하려하는 편이다.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일단 같은 학번으로 교사인 아내(양혜단)에게 감사하다. 우여곡절이 있는 삶을 사는 남편 곁에서 가정을 건강하게 지켜줬다. 엄격한 사람으로 도덕적 기준을 분명히 제시해 바른 길로 가게 도와줬다. 정치인 강기정, 기업인 고정주, 전남대 전 총장 강정채, 언론인 박화강, 의사 정담 등 여러분들께도 늘 감사한 마음이다. 함께 하면서 흔들릴 때 도와주고 격려해 주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공직을 마친다면 이후 20년간은 교육에 종사하고 싶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작은 학교를 만들거나 지역대학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의 방법도 좋고, 아시아사이언스파크를 매개로 아시아 문화와 기술 교육 아카데미를 구축하는 것도 생각중이다. 유연하게 무엇인가에 구애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그는 어렸을 때 집이 서당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학과 서예를 즐기는 것도 이 영향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노자의 도덕경에 있눈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끝으로 광주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인심, 민주의식, 역사성 등 광주가 가진 장점은 대단한 가치가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광주가 혁신하고 변화·발전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민들 역시 세계를 바라보고, 첨단과학기술의 시대를 직시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사고를 갖출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도 혁신되어야 한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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