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함께 한 짧은 여행 - 이중섭 소설가
2024년 09월 10일(화) 00:00
강화도에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한 문우의 초대로 스님이 한 분 참여했다. 삼십 살쯤 되어 보이는 비구니 승이었다. 버스 안에서나 길을 걷다가도 하염없이 웃었다. 맑은 목소리에 주위가 환했다. 연미정(燕尾亭)! 정자에서 바라보는 바다 물길이 제비 꼬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그만 언덕배기 위에 세워진 정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북 땅이 보인다.

“와아! 멋있네요.” 스님은 바다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스님! 속세를 떠난 지 몇 년이나 되었나요?”

4년이란 대답보다 비구니 승의 눈이 먼저 웃는다. 웃음이 얼굴 전체로 번지면서 하얀 치아가 반짝인다. 낯선 사람들과 처음 어울림에도 전혀 서걱거림이 없다.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얼굴이 환하네요.” 출발할 때의 뻘쭘함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너무 좋습니다. 강화도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습니다.” 청량한 공기 속에 또랑또랑 염불 소리가 퍼진다. “절 일이 힘들었나 봐요?” “네,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루 내내 밥만 펐습니다.” 왠지 밥을 잘 풀 것 같은 얼굴이다. 속마음을 말할 수 없어서 그냥 풋, 웃고 만다.

“절에서는 주지 스님이 아무 데도 못 가게 합니다. 나오니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모임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슬슬 장난기가 생긴다. “스님은 절이 맞지 않은 거 같은데 거 그냥 나오시지 그래요.” 약간 마음에 찔린다. 속세로 나온다고 딱히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음이 먼저 알아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 함께한 사람들이 너무 좋습니다. 음식도 너무 맛있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고목이 옆으로 누워있다. 배경으로 둘이 한 컷 셔터를 누른다. 문우들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는다. 스님의 얼굴이 함박꽃이다. 스님에게 사진을 보내려 휴대전화 번호를 묻는다. 스스럼없이 알려준다.

“카톡은 하지 않습니다. 문자로 보내주십시오.” 찍은 사진을 보낸다. 바로 핸드폰을 열어본 스님이 답을 남긴다.

“엄청 빠르시네요. 사진 너무 멋지게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스님과 사진을 찍자는 요청이 많아진다. 스님의 발걸음이 공양간에서 밥을 풀 때보다 더 바쁘게 움직인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인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언덕 위에 한옥으로 길게 배치된 성당이 이채롭다.

“와, 강화도는 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이제 어디서나 스님의 목소리가 가장 크고 밝다. 어린이의 목소리처럼 경쾌하다. “여기 성당인데 스님의 목소리가 너무 큰 거 아닙니까?” “너무 교장 선생님 같으십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맨날 이러고 살았으면 합니다.”

“그럼 때려치우고 나오시지요?” 아차, 싶어 얼른 입을 막는다. 스님은 잘 스며든다. 면벽수행, 용맹정진, 이런 단어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후덕한 스님이 결국에는 득도하는 이야기가 많다.

마지막 점심은 대명포구다. 식사를 마치고 모처럼 개인 시간이 주어져 스님과 포구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온갖 생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눈에 띄는 생선은 홍어다. 국내산 홍어가 상당히 많다. 나란히 가오리도 놓여 있다. 소라, 바닷가재인 ‘쏙’도 보인다.

“스님, 혹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무것도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긴, 스님이 고기나 생선이 필요할 리가 만무하다. “진짜 싸네요. 서울에서는 전혀 살 수가 없는 가격이네요.”

그제야 다음 달부터 학교에 들어간다는 스님 말이 생각난다. 사찰 음식을 공부한다고 했다. 순간, 어쩌면 이 스님이 주지가 될 때쯤이면 생선이나 고기가 사찰음식 차림표에 올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시간이 되어 일행이 있는 버스로 돌아온다. 같은 좌석의 문우가 어디 갔다 오느냐 묻는다.

“스님과 데이트하고 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스님이 돌아본다. 교장 선생 같은 사람이 무슨 농담이야 하는 듯 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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