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운주사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09월 09일(월) 00:00
천불천탑(千佛天塔)으로 유명한 화순 운주사(雲住寺)는 베일에 싸여 있다. 사찰 창건자로 도선 국사와 혜명 스님이 거론됐으나 11세기로 추정되는 사찰의 건립 시기와 맞물리지 않아 의문을 낳고 있다. 도선은 9세기, 혜명은 10세기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운주사 창건을 전하는 기록이 17세에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공교롭게도 혜명이 창건했다는 기록을 전하는 ‘동국여지지’가 처음 등장한 시점이 1656년, 도선이 주도했다는 내용이 수록된 ‘도선국사실록’의 출간도 1657년이다.

운주사는 석불 108구와 석탑 21기가 집중돼 있는 보기 드문 공간이다. 전문가들은 운주사 석탑과 석불의 특징으로 전형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파격미를 꼽는다. 탑신(塔身)에 새겨진 마름모, 십자꽃무늬, 수직선 등 문양은 북방 실크로드 불교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석조물서 드러난 극도의 변형과 왜곡, 추상화, 정교함이 떨어져 보이는 특징 때문에 일부 연구자는 ‘장인이 아니라 민간인이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운주사 석조물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으나 만든 이들은 여전히 미궁이다.

정성권 단국대 교수는 최근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의 세계유산 등재 국제학술대회’에서 운주사 석불과 석탑을 만든 이들이 요(遼)나라에서 고려에 유입된 거란 유민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운주사 석불이 북방 초원지대의 석인상과 상통한다는 설명이다. 평면 형태의 얼굴에 눈동자와 입을 생략하고 눈썹과 코만 T자 형태로 새기는 양식 때문이다.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도 요나라 초대 황제 야율아보기(872∼926)를 안장한 석실과 닮았다고 한다. 정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석불·석탑을 만든 거란 유민이 운주사 앞 마을(중장터)에 살았다고 추정한다. 결론적으로 북방 유목문화와 정착문화가 어우러진 용광로가 화순 운주사라는 얘기다. 운주사 석불·석탑군은 화순군의 노력으로 201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학계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창건 비밀이 밝혀지고 운주사가 세계유산으로 자리매김하는 날을 고대한다.

/penfoot@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