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의대반과 기득권 교육 - 김춘식 동신대 교수, 전 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
2024년 09월 04일(수) 21:30
사교육 시장이 다시 한 번 요동치고 있다. 바로 ‘초등의대반’ 때문이다. 초등학교 5~6학년부터 의대를 목표로, 중고등학교 수학을 넘어 대학 과정의 가우스 기호나 행렬식 개념까지 가르치는 이른바 ‘초고속 선행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얼핏 보면 남들보다 일찍 열심히 공부해 장차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를 얻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료인이 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은 자녀를 조기에 약육강식의 경쟁으로 내모는 반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놀고, 활동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와 교육 담당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또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이런 부당한 학부모의 욕구에 편승하는 사교육은 처음부터 잘못된 ‘시장판’이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반교육적 사교육을 제재할 법적 제도가 없다는 점에 긴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후일 그렇게 양성된 의사들이 과연 인간의 신체와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윤리에 적합한 전문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아가 사교육과 경쟁 교육의 심화로 인해 전 국민이 경쟁심리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사회적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이 초등의대반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으로 인한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천민자본주의적 경쟁질서와 이에 편승한 고질적인 경쟁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 로스쿨에만 입학하면 요즘 순서대로 ‘검사’, 판사, 변호사가 되어 기득권층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다는 왜곡된 신념이 있다. 마찬가지로, 의대만 가면 높은 경제적 풍요가 보장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물질주의적 확신도 존재한다. 둘 다 기득권 수호라는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왜곡된 욕망은 이전 왕조시대의 과거제도와 같은 신분 상승 구조에서 분화된 소위 지배욕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과거제도가 시험제도를 넘어 당시 사회적 이동성의 통로로 작용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출세지향적 학벌주의와 고시주의로 변질되어 오늘날까지 한국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교육 시민단체가 설문조사한 결과, 학부모 응답자 중 63.3%가 ‘초등의대반은 부적절하고 교육적으로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이제 초등의대반과 의대열풍을 넘어 ‘기득권’, ‘경쟁’, ‘지배’ 등 우리 사회의 교육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초등학생 대상의 의대선행학습은 경제적 부담과 교육 불평등을 초래하며, 공교육에 악영향을 미친다. 오죽했으면 국회에서 ‘초등의대반 방지법’까지 발의되었겠는가.

사실, 기자의 표현처럼 현재 수험생과 대학생, 직장인을 가리지 않고 의대에 가기 위해 입시 학원을 찾는 ‘의대 열풍’과,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한국 의료에 사망 선고를 내리고 휴학과 사직을 선택하는 ‘의료대란’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기득권(旣得權)이다. 기득권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이미 차지한 권리나 권익을 의미한다. 없는 사람은 갖고 싶고, 가진 사람은 뺏기지 않으려 하는 특징을 갖는다. 현재 동일한 미래를 지향하는 이 사회에서 의사가 아닌 사람은 의사가 되기를 원하고, 의사인 사람은 의사로서의 삶을 거부하는 이 모순된 상황은 2024년 한국 사회의 왜곡된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로 ‘초등의대반’은 이러한 기득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최악의 아동판 결투장이다.

마지막으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교육이 꼭 필요하다면, 삶에는 늘 새로운 도전이 있고, 도전하는 삶에는 더 큰 어려움들이 따르기에 포기하지 않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사교육, 또한 서로를 지탱하고 위로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 배려하는 공동체를 위한 사교육 열풍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왜 우리 청소년들이 일부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정신적·사회적 균형이 깨진 사회를 살아야 하는지, 모든 교육 주체들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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