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련 기념관 - 송기동 예향부장
2024년 09월 03일(화) 22:00 가가
“대한 남아(男兒)의 용기와 기상을 전 세계에 과시해 기쁩니다.”
1980년 8월 11일, 해남 출신 조오련 선수가 50㎞ 거리의 대한해협 도영(渡泳)에 사상 최초로 성공한 후 밝힌 소감이다. 이날 0시 5분 부산 다대포를 출발해 오후 1시 21분 대마도 북단 등대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13시간 16분이 소요됐다. 같은 달 23일 광주 금남로 카 퍼레이드에 이어 도청앞 광장에서 ‘조오련 선수 개선 도민 환영대회’가 성대하게 열려 5·18민중항쟁의 아픔이 채가시지 않은 시·도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삼하지보(三河池洑)’로 불리는 고향 방죽에서 수영선수의 꿈을 키웠던 조 선수는 상경해 각고의 노력 끝에 1969년 6월 열린 전국체전에서 자유형 1500m에 출전, 대회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수영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된 시점에 국가대표에 발탁,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4년 뒤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 같은 종목에서 2연패를 달성하며 ‘아시아의 물개’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1978년 선수생활을 마감한 그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다시 한번 국민들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한해협 횡단에 이어 영국~프랑스간 도버해협(32㎞) 횡단(1982년), 울릉도~독도간 횡단(2005년)에 성공했다. 특히 2008년 7월에는 독도를 33바퀴 헤엄쳐 도는 ‘독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2009년 8월,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기념해 재도전을 준비하던 그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고(故) 조오련(1952~2009) 선수를 기리는 ‘조오련 기념관’이 최근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에 문을 열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수영의 역사를 새롭게 쓴 그는 마땅히 기억해야 할 수영스타이자 ‘스포츠 영웅’이다. 이번 기념관 개관을 통해 그의 불굴의 도전정신 또한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대한다. 타계한 해 12월 모교인 서울 양정고 교정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그가 자주했던 어록이 새겨져 있다.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시작하는 순간 도전이 된다.”
/song@kwangju.co.kr
1980년 8월 11일, 해남 출신 조오련 선수가 50㎞ 거리의 대한해협 도영(渡泳)에 사상 최초로 성공한 후 밝힌 소감이다. 이날 0시 5분 부산 다대포를 출발해 오후 1시 21분 대마도 북단 등대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13시간 16분이 소요됐다. 같은 달 23일 광주 금남로 카 퍼레이드에 이어 도청앞 광장에서 ‘조오련 선수 개선 도민 환영대회’가 성대하게 열려 5·18민중항쟁의 아픔이 채가시지 않은 시·도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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