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시 암송 사랑- 문 길 섭 시암송국민운동본부 대표
2024년 08월 27일(화) 00:00
시를 좋아하게 되고 시를 외우면서 시 암송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글을 만나면 메모해 두었다가 시 암송을 권할 때 활용하곤 한다.

먼저 시 자체의 소중함에 대한 프랑스 현대시의 원로인 르네 샤르의 발언이 떠오른다. 그는 한국일보 김성우 특파원의 “시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거침없이 “시는 인간의 끼니다. 그리고 시는 인간에게 있어 새와 산과의 관계 같다”라고 했다고 한다. 시를 특별히 사랑하는 프랑스 시인다운 글로 생각된다.

유안진 시인의 다음 글은 암송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힌다.

“시를 읽고 외는 것은 깊고 폭넓은 정서 훈련은 물론 탄력 있는 감성 훈련이 된다. 이런 장점 덕분에 서구의 아동 교육에는 아직도 고전시를 암송시킨다. 시를 암송하면 리듬과 암기 능력이 다른 내용에 전이(轉移)된다는 능력심리학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훈 작가는 시험을 위해서 영시들을 외워야 했다고 한다. 그는 암송을 “확실하고 아름답고 단순하고 분명하고 앞뒤가 맞은 문장을 외워서 자기 육체의 일부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암송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동생의 암송을 격려하기 위해 내 맏형이 해 주었던 얘기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프랑스 퐁삐두 대통령은 만행(萬行)의 시를 외웠다더라(시 한 편을 10행으로 본다면 만행은 1000편쯤의 시가 될 것이다).”

짧지 않은 기간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내가 경험한 가장 인상 깊었던 문화충격 중 하나는 프랑스 교육 당국이 초등학교 과정 내내 유일한 숙제로 시 암송을 택한 일이었다.

거기서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과 내가 경험한 일을, 그곳에 유학하면서 딸아이를 키웠던 권지예 작가가 같은 경험을 ‘한국의 명문(名文)’ (월간조선사·2001)에 소개한 걸 읽고 무척 반가웠다. 긴 글이지만 암송에 관한 흔치 않은 글이어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중학교 과정부터는 물론 대입학력고사에 주과목으로 철학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나라. 사지선다형 시험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세계문학을 주도하는 찬란한 문학사를 가진 나라.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 숨만 쉰다고 모두 철학자나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알고 보면 그들의 문장 수업은 자연스럽게, 그러나 철저하게 조기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리에 나가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 먹은 프랑스 이이를 아무나 붙들고 시 한 수를 읊으라 그래 보라. 아직 불어 문장을 쓸 줄도 모르는 초등학교 1, 2학년생의 입에서 문학사에 빛나는 시인의 시를 듣기는 어렵지 않다.

프랑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 불어를 쓸 줄도 모르는 딸애도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외워가야만 했다. 그것이 유일한 숙제였다. 시 노트엔 선생님이 시를 복사한 걸 노트 왼편에 붙이고, 오른쪽 흰 여백엔 아이가 시의 이미지를 포착해 정성껏 그림을 그려 넣었다.

겨우 만 여섯 살이 넘은 딸애는 노트를 나에게 맡기고 작은 입으로 시를 암송했다. 눈을 감기도 했고 선생님이 감정을 넣어 읽던 걸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시 암송은 5년간의 초등학교 과정 내내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동안 기라성 같은 시인들의 시들이 딸의 입에서 무수히 흘러나왔고, 또 가슴을 적시고 갔다. 위고, 베를렌느, 모리스 카렘, 랭보, 모파상, 발레리, 아폴리네르, 프레베르, 레이몽 크노, 데스 노스...

비유나 표현 자체도 독창적이고 아름답지만 각운(脚韻)을 맞추는 절제된 형식을 통해 더욱더 풍부한 언어감각을 훈련시키기에는 시 암송이야말로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가을 저녁, 베를렌느의 ‘가을’이나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같은 시를 어린 딸의 입을 통해 듣노라면 감개가 무량해지곤 하였다.”

권 작가의 글이 교육당국이나 문화계를 주도하는 인사들을 움직여 우리나라도 시 암송이 중요한 일상의 하나로 자리잡아 갔으면 한다.

시암송국민운동본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2년 안에 좋아하는 시 열 편 외우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150명 가까이 참여하고 있다. 동참을 원하는 분에겐 ‘외우고 싶은 명시 50편’을 선물로 보내드리고 있다(joywrit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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