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와 무진주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08월 25일(일) 22:00
광주가 역사상 한 나라의 수도였던 적이 있다. 견훤이 892년 후백제를 건국하고 왕도로 정해 기틀을 닦은 곳이 광주(무진주)다. 순천에서 889년 병력을 일으켜 무진주에 터를 잡은 때를 헤아리면 지금으로부터 1131년 전이다. 삼국사기에는 “견훤이 무진주를 근거로 백제를 칭하자 무주 동남 군현이 항복하고 복속했다. 무진주를 습격해 스스로 왕이라고 칭했다”고 적고 있다. 후백제 첫 도읍이 광주라는 데 이견이 없으나 견훤의 출생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견훤은 상주 가은현(현 문경시 가은읍) 사람’이라고 기술돼 있고, 삼국유사에서는 견훤의 무진주 북촌 탄생설화를 전하고 있어서다. 일부 학자는 무진주 북촌을 광주시 북구 생용동(生龍洞)으로 해석한다. 용이 태어난 동네라는 비상한 지명에다 마을에 탄생설화가 구전되고 있다는 이유다.

견훤의 무진주 도읍을 입증하는 유적은 무등산에 있는 무진고성(武珍古城)이다. 전남대박물관이 1980년대 두 차례 발굴한 결과 초축은 8세기 말, 수축(修築) 시기는 9세기 말로 추정됐다. 당시 서조문(瑞鳥紋·봉황 등 상서로운 새 문양) 수막새, 성(城), 궁성(宮城), 국성(國城), 대궁(大宮) 등 와당이 발굴됐다. 모두 왕성이나 왕궁을 방증하는 유물인데 견훤의 광주도읍 시기와 맞물린다. 광주에서 견훤과 무진주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리는 이유다. 지난해 광주시는 ‘후백제 왕도 광주 재조명 학술대회’를 열었고 전남대 호남학연구원과 지역사연구소는 ‘견훤의 후백제 건국과 광주’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국가유산청이 최근 국립 후백제 역사문화센터 후보지 공모절차에 돌입했다. 이 센터는 후백제 역사문화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연구·전시하는 총괄 기구다. 광주시를 비롯해 후백제 두번째 도읍인 전주를 비롯해 충남 당진도 유치전에 가세했다고 한다. 학계에서 광주시는 후백제 첫 도읍으로 가장 많은 유적 등이 있어 센터 건립 후보지로 손색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벌써부터 객관적인 평가보다 정치권 입김이 작용해 공모 취지를 흐리고 있다는 데 있다. 부디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의로운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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