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골목비엔날레, 다정한 안부가 만든 축제 - 이다영 문화기획자
2024년 08월 20일(화) 00:00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길에서 서로 인사하는 어른들을 심심치 않게 봤었다. 철저한 인사 교육을 받았던 나 역시 동네를 돌아다니며 인사하는 건 일상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타인에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 어려워졌다. 헬스장이나 자주 가는 카페에서 종종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적 친밀감만 가지고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남에게 마음을 여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지기 쉽다. 아마도 무례한 관심과 친밀감에 비례하지 않은 이야기로 데인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 나조차도 그랬다. 딱히 할 이야기도, 친해질 마음도 없는데 괜히 말 걸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하지만 마을 커뮤니티와 일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알고 지내게 되니 길을 걷다 만나 스몰토크를 하는 건 흔한 일이 되었다. 주민 설명회에서 만난 통장님, 감 나누어 주시는 옆집 선생님, 에너지 넘치는 이웃 카페 사장님까지.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랄까.

이웃과 친하게 지내면 괜히 내 개인사도 털어놔야 할 것 같고 이웃집 숟가락 개수도 알아야 할 것 같은 부채감에 멀리했던 관계들은 괜한 걱정이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절한 온도의 관심. 서로에게 보이는 자상한 마음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작용했다.

김도훈의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다정함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이웃에게 인사와 관심을 건넨다고 세상이 버라이어티하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서로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이웃의 안녕을 바라는 다정함에서 시작된 축제가 있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양림골목비엔날레. 지난 2020년, 팬데믹으로 일상이 멈추고 생기를 잃어가던 양림동에서 이 축제의 싹이 틔어졌다. 양림동에 살거나 동네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기획자, 주민 및 상인이 모여 마을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마을 내 다양한 장소에서 펼쳐지는 분산형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양림골목비엔날레의 시초였다.

누군가 오랫동안 지내던 한옥, 제약회사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 유치원이었던 벽돌집이 전시장이 되었다. 이처럼 삶과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소에서 펼쳐진 전시는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와 확연히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과 이벤트도 함께 진행되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물론, 작가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보는 예술 체험도 기획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시민들에게 일상 속에서 예술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마을의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일은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상황을 걱정하고 안부를 묻는 다정한 로컬 커뮤니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웃 간에 다정하게 건넨 인사와 작은 관심들이 모여 축제를 만들어냈고, 이는 단순한 예술 행사를 넘어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양림골목비엔날레를 몇 차례 운영하며 공통적으로 마음에 새긴 대전제가 있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 쉬운 길은 아니다. 일일이 찾아가 축제에 대한 안내를 드리고 동참해 주실 것을 요청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즐거운 이벤트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귀찮은 일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도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하는 주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방향이 옳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양림골목비엔날레와 같은 축제가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문화가 퍼져 더 따뜻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의 작은 관심과 다정함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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