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되어 만든 장애인 영화 “휠체어 말고 사람 봐줬으면”
2024년 07월 31일(수) 08:00
장애여성 사랑 다룬 ‘똥 싸는 소리’ 조재형 영화감독
2018년 사고 전신마비…3년 재활 후 연출 재도전
광주영화영상인연대·실로암사람들과 광주서 제작
“10년 전에 찍으려고 했던 영화가 이제야 완성됐습니다. 독립영화 개봉이 쉽지 않은 상황에 관객들과 만난다고 하니까 설레네요.”

31일 개봉한 독립 영화 ‘똥 싸는 소리’는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 ‘미숙’이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겪은 후 직장 동료 ‘태식’과 가정폭력 피해자 ‘수영’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이 영화는 장애가 있는 광주 출신 영화인 조재형(55·사진) 감독이 연출했다. 서울 충무로에서 영화를 연출했던 조 감독은 2014년 고향인 광주에 내려와 ‘삼포 가는 길’, ‘광인-맛의 기억’, ‘세월오월’ 등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2018년 사고로 경추가 손상돼 전신마비가 되면서 3년 동안 수많은 병원을 돌며 재활치료를 받았다. 현재 왼쪽 손목으로 전동휄체어를 작동하는 것 외엔 일상생활 움직임이 힘든 상태다. 비장애인에서 하루 아침에 장애를 갖게 된 조 감독에게 다시 영화를 찍는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몸은 셧다운, 머리는 번아웃이 되어 버렸어요.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고 살아갈 의지도 없었죠. 병원 생활 후 집에 돌아가 혼자 있으면 더 무기력해질까봐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화를 찍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살아가는 의미였죠.”

먼저 조 감독은 2014년 비장애인일 때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3년간 촬영했던 김미숙씨 이야기를 생각했다. 당시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에서 일하던 장애인 김 씨의 밝은 에너지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힘을 주던 모습을 보고 그를 담고자 했다. 실제 김씨의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가 ‘똥 싸는 소리’다.

광주 영화인들의 도움을 받아 시나리오 작업부터 오디션, 편집, 후반 작업까지 1년에 걸쳐 영화를 만들었다. 불편한 몸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스스로 화장실 해결이 어려워 촬영 중 물을 마시는 것을 자제해야했고, 손발이 저리는 것을 참아가며 작업을 했다.

신체적인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는 “영화를 연출하는 그 순간은 장애인이라는 걸 잊어버릴만큼 엔돌핀이 솟았다”고 말했다. 본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소식을 들은 김 씨도 사고 후 3년 만에 재기한 조 감독을 응원해줬다.

“‘장애인’하면 역경 극복, 감동을 키워드로 생각하는데 사랑도 일도 열심히 하고 통통 튀는 성격으로 살아나가는 장애인이 많아요. 휠체어를 보지 말고 편견 없이 사람 그 자체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 감독은 또 다른 장애인 이야기를 구상 중이며 5·18 관련 영화도 제작할 계획이다.

광주영화영상인연대와 장애인단체 실로암사람들이 함께 제작한 독립영화 ‘똥 싸는 소리’는 기획, 촬영, 스태프 모두 광주 영화인들이 함께 광주에서 제작한 지역영화다. 영화는 31일 서울, 인천, 대구 등 전국 10개 영화관에서 개봉하며 광주에서는 광주독립영화관, 광주극장에서 상영된다. 오는 8월 20일 저녁에는 광주극장에서 관객과의 대화가 열릴 예정이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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